(5) 노인들의 사각지대 - ① 벗어나기 힘든 ‘빈곤’


지난해 7월 충북 청주시에서 혼자 살던 60대 노인이 ‘부양 가능한 아들이 호적에 있어 기초수급 중지 예정자가 됐다’는 통보를 받고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30여년 전 부인과 이혼한 뒤, 아들과도 연락이 끊겨 그동안 한 달에 46만원씩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생활수급자 선별과 관련, 해당 지자체 담당자는 “숨진 조씨가 지자체에 ‘부양의무자가 있지만 왕래가 없어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소명자료를 제출해 검토 중이었다”고 말했다.

울산지역 수급자 25%가
65세 이상 고령층
부양의무자 기준 미달
비수급 빈곤노인도 많아

최저생계비 185% 미만
장애인·노인·한부모가정
올해부터 기준 완화

선정 탈락땐 자료 제출 등
본인 직접 소명도 ‘부담’

소득이 없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극빈층 중에서도 노인들의 경우 생활환경이 더욱 열악하다. 신체능력과 근로능력이 떨어져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질병에도 쉽게 노출되고 혼자 방치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준으로 살고 있어도 ‘부양의무자’가 있을 경우,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얻기도 힘들다. 부양의무자란 기초생활수급권자의 1촌직계와 그 배우자를 뜻한다.

울산의 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연락이 거의 되지 않는 자녀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노인들을 볼 때 안타깝다”며 “노인복지 사각지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형태”라고 말했다.

◇지원못받는 빈곤가구 80%가 고령층

울산지역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1만7261명에 달한다. 그 중 65세 이상 노인은 25% 이상인 4700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에 선정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노인인구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비수급 빈곤가구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지원이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가구의 약 80%가 중고령층으로 나타났다.

가구주의 연령으로 살펴보면 65세~75세가 35.8%, 75세 이상이 26.7%, 55~64세가 15.8% 순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가구주의 평균 연령이 65.11세로 노인이 빈곤 사각지대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가구원 중 근로 활동이 가능한 가구원이 전혀 없는 가구도 전체의 약 80%를 차지했다. 이는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빈곤가구임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수급자가 되지 못한 대다수가 근로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노인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 울산시는 노인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노인일자리를 만들고 기초생활수급자 선별과정에서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등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울산시 노인일자리지원센터 개소식에 많은 노인들이 몰렸다.

울산시노인일자리지원센터 제공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소득인정액(소득과 재산 등을 합쳐 환산한 금액)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총족하려면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없어야 한다. 부양의무자가 수급자거나, 중증장애인을 부양하고 있는 경우, 직계비속을 부양하고 있는 경우에는 부양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부양의무자 가구의 최저생계비가 130% 미만인 경우 부양능력이 없는 없는 것으로 인정한다.

단, 올해부터 장애인과 노인, 한부모 가정 등에 한해 최저생계비 130%미만(4인 가족 기준 250여만원)에서 185%미만(4인 가족 기준 360여만원)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적용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소득이 완화된 것은 지난 2006년 이후 6년만이다. 이는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데도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부양의무자가 있어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빈곤층을 103만명으로 잡은 바 있다.

◇여전히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

일부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돼도 전체 수급자는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울산시 복지정책과 담당자는 “장애인과 노인, 한부모 가정 등에 부양의무 기준이 완화됐지만, 일반 가정은 여전히 최저생계비 130% 미만을 충족해야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새로운 완화기준을 적용받는 구체적인 인원 수 등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더구나 최저생계비 185%미만으로 완화된 기준은 수급권자가 신청해야 적용이 가능하다.

울산 중구 생활지원과 관계자는 “아직까지 신청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같은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홍보활동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부양의무자의 소득 등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에서 탈락된 경우에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시 복지정책과 담당자는 “기본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선별과정에서 전문요원이 방문조사 등을 통해 전수조사를 실시,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등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본인이 직접 소명자료 등을 제출해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기피하고 있다거나 거부하고 있는 점을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소명자료를 제출한 뒤에는 지자체의 조사 결과와 수급자의 진술내용, 통장입금내역, 수급자의 생활실태 등을 종합적으로 취합해 최종적으로 수급여부를 가리게 된다. 부양의무자에게 부양비를 징수하게끔 하는 강제적인 방법도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수급비를 우선적으로 지급한 후, 수급비를 부양의무자에게 징수하는 것이다.

울산 동구 통합조사관리 담당자는 “노인들이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을 이용하고 있지 않다”며 “제도적으로 봤을 때 사각지대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들여다보면 제대로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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