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① 장애‘등급’ 따라 희비 엇갈려

▲ 지난달 26일 열린 제8회 전국장애인대회에서 울산장애인부모회 김옥진 회장이 참가해 장애인 차별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울산장애인부모회 제공
울산에 사는 장애인 A씨는 시름이 깊어졌다. 뇌병변을 앓고 있던 A씨의 장애등급이 2급에서 3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보행이 어려워 전동휠체어를 타는 A씨는 등급이 바뀌면서 장애인 콜택시인 ‘부르미’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 평소 장애인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하며 생활했지만, 이제는 이동 자체가 힘들어졌다. A씨는 아내가 일을 하러 나간 뒤에는 온종일 집에만 있어야 한다.

매일 장애인체육관에서 해결하던 점심도 이제는 집에서 먹을 수밖에 없다.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할 수 없는 A씨는 단 한 번에 일상생활이 순식간에 마비가 된 것처럼 멈췄다. A씨의 아내는 등급이 바뀐 것에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재심사에서 A씨의 다리 근력의 일부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A씨의 아내는 수치 상의 근력과 보행하는 능력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의욕이 상실된 A씨는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건복지부, 지난해 4월 장애등급 재심사
올해 울산지역 1255명 국·시비 지원 대상
2→3급 하향땐 장애인 콜택시 등 이용불가
일부 사라진 활동지원에 박탈감·의욕상실
수치적 접근보다 현실적 어려움 적용돼야

◇장애등급, 차별의 시작으로

매년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지난 1981년 제정된 이후, 올해는 32회를 맞았다.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의지를 북돋우고, 장애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부에서는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잘못 정립돼 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회복해 차별을 없애자는 의지에서다.

▲ 울산장애인부모회 부설 장애인식개선센터가 지난해 12월3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중구 성남동 거리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장애인부모회 제공

장애인 차별 철폐에서도 1순위로 꼽히는 것은 ‘장애등급 폐지’다. 장애등급 심사제도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장애 등급에 따라 서비스의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울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회서비스사업팀 도경은 팀장은 “현행 장애등급은 장애인의 환경적 요인들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신체 상태에 의해서 결정된다”며 “일상생활의 수행 어려움과 거주상태, 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해 그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기준, 1급은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2급은 설사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더라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도 팀장은 “미세한 부분에서 수치가 나눠져 한 사람은 1급을 받고 다른 사람은 2급을 받는다”며 “똑같이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애매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신체 상태 등 수치적으로 접근하기 보다 ‘현실적인 어려움’,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더 크게 작용돼야 한다는 것이 도 팀장의 주장이다.

2012총선대선장애인공약개발연대는 ‘2012년 총선·대선 장애인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장애등급에 의한 서비스 자격제한 폐지 및 개별 서비스 필요도에 따른 서비스 제공’ 등을 촉구하기도 했다.

도 팀장은 “등급이 변경된 장애인들을 만나다보면, 신체 상태 등은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데 서비스가 사라져 의욕이 상실된 것을 볼 수 있다”며 “장애등급의 경우, 장애연금과 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과 긴밀하게 연결돼있는 만큼 서비스가 사라진 것에 대한 박탈감도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바뀌어야

울산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울산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총 4만8926명이다. 시는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장애수당과 장애인연금, 의료비 지원 등 외에도 지난해 10월부터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당초 보건복지부의 활동지원은 장애등급 중 1급 장애인에게만 적용되지만, 울산시에서는 국비 외에도 시비를 들여 1급과 2급, 3급 중복장애인까지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이는 소득 등을 고려하지 못한 장애등급 심사제도의 한계점을 일정부분 해소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활동지원제도는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해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것으로 성인 1급 기준 한 달에 86만원(약 103시간)을 보조받을 수 있다. 지난해 국비와 시비를 포함해 885명이 혜택을 받았으며, 올해는 1255명까지 확대할 계획에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장애등급 심사결과에 따라 장애인복지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며 “대상자가 늘어날 경우, 언제든지 예산을 확보해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월, 장애등급 심사 대상을 기존의 1급과 2급, 3급 중복장애인에서 전체 1~6급 신규 등록자로 확대했다. 장애인연금 등 신규 장애복지 서비스를 신청할 때도 재심사를 받도록 했다.

장애등급심사 대상 확대는 장애인에 대한 복지 혜택이 늘어남에 따라 의사와의 인간적 유대관계를 악용해 장애인 등급을 높게 판정받으려는 것을 막으려는 계획에서다.

울산장애인부모회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의 심사 확대 이후, 실제 탈락된 사례를 모아봤더니 부정수급 보다는 심사표의 점수 하나에 따라 달라지는 안타까운 일화가 더 많았다”며 “장애등급 폐지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다. 그것을 예산과 행정의 문제로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장애의 개념을 손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장애의 개념을 사회적 환경으로 생각한다”며 “어느정도 손상이 됐느냐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많이 손상된 사람에게 우선순위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장애를 느낄 수 없는 환경을 우선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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