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③ 성인장애인 위한 활동시설 필요

지난 13일 오후 1시. 울산 남구 여천장애인보호작업장에는 20여명의 장애인들이 장갑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장갑을 검시하고 있던 황선희(여·42·지적장애 3급)씨는 “내가 만든 장갑에 불량이 안나왔을 때 행복하다”며 “사람들이 이 장갑을 끼고 일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6년째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베테랑 선희씨의 바람은 더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 그는 “지금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일을 하는 데 조금 불편하다”며 “눈이 더 좋아져 불량이 없는 좋은 장갑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복지관 프로그램 이용기한 3년

그 이후로 갈 곳 사라져

일, 장애인 삶의 큰 활력소

지자체·기업차원 지원 절실

선희씨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기 전, 일정한 직업 없이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다. 식당일을 했던 때도 있었고, 남편과 아들이 집을 비운 뒤, 밤이며 마늘을 까는 부업도 했다. 선희씨는 “집에만 있을 때보다 일을 할 때가 더 좋다”며 “돈을 벌기 전에는 쓰기만 했었는데, 월급을 받고 보니 돈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일과 재활훈련 동시에 할 수 있어

울산에는 총 12곳의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 있다. 근로사업장 1개소와 보호작업장 11개소(표 참조)가 운영되고 있다. 근로사업장은 장애인들이 주로 일을 하는 사업장이며, 보호작업장은 일과 보호를 동시에 하고 있는 곳이다.

여천장애인보호작업장(이하 여천작업장)은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 등 19명의 장애인이 일을 하고 있다. 수익사업으로 장갑판매와 유통, 웹솔루션 등을 하고 있으며, 교육재활사업과 사회재활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장갑 직조기 47개와 후처리기 7대, 열처리기 2대가 있는 여천작업장에서는 1일 평균 1만2000켤레의 장갑을 생산하고 있다. 한 달은 35만켤레, 연간 420만켤레다.

매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0년 3억9486만원이었던 것이 2011년 10억원까지 늘어났으며, 올해는 12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천작업장 김영옥 실장은 “근로장애인들의 월 평균임금은 80만원 수준”이라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로한 이후에는 풍물교실과 수영, 축구교실 등 사회적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장애인에게 일은 꼭 주어져야 하는 것”이라며 “일 외에도 미술치료와 수영, 축구, 풍물교실 등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돼 있다. 장애인들의 삶의 활력소가 되는 활동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울산 남구 여천장애인보호작업장은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 등 19명의 장애인이 일을 하고 있다. 경주의 한 사과농장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모습과 남구 여천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장애인근로자들이 장갑 검시 작업을 하는 모습.

◇장애인 보호작업장 많아져야

울산의 보호작업장 전체 근로장애인수는 약 300여명이며, 평균 근로장애인수(일부 사업장 제외)는 25명 내외다. 울산 전체 등록된 장애인의 수가 5만여명이고,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워 활동지원을 받는 장애인수가 1300여명인 점을 감안할 때, 많은 수의 성인장애인들이 보호작업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19명이 일하고 있는 여천작업장의 경우, 대기인원이 20~30명일 정도다. 기존의 일을 하고 있는 장애인을 퇴사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이사를 가거나 건강상의 이유가 생겨 결원이 생기면 들어올 수 있다.

여천작업장 우수정 시설장은 “지적장애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복지관 프로그램을 많이 이용하게 되는데, 프로그램 이용기한이 3년이기 때문에 그 이후로 갈 곳이 없다”며 “보호라는 울타리 속에서 일과 재활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작업장이 많아져야 한다. 허가를 내주는 각 지자체의 지원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우 시설장은 “개인적으로 기업들이 포스위드(포스코 자회사)처럼 자회사를 만들어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줬으면 좋겠다”며 “장애인고용은 이익창출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다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인터뷰]“장애인에 일이란 ‘쓸모있는 사람’ 인정받는 길”

우수정 여천장애인보호작업장 시설장


지난 2001년부터 여천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일했던 우수정 시설장은 ‘장애인의 편견’을 깨기 위해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 시설장은 “장애라는 것은 불가능이 아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장애라는 울타리에 갇혀 좌절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장애인들이 많다”며 “그들에게 자신의 남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편견 깨기 위해
사회복지사의 길 걷기로

안되는 것 강요하기보다
잘하는 것 더 잘하도록 격려

일거리 줄어들거나
제품 판매 안될때 가장 걱정

장애인 복지분야 중에서도 재활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업재활에 몸담고 있는 우 시설장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잔존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일이란 단순하게 노동을 떠나 가치있고 쓸모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대접받는 것”이라면서 “아침에 눈을 떠서 갈 곳이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장애인들의 간절한 바람이자 큰 즐거움이고 행복이다”고 말했다.

여천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우 시설장은 지적장애인의 ‘멘토’이기도 하다. 처음 작업장을 방문했을 때, 대중교통도 이용하기 힘들어하던 장애인이 사회재활훈련과 대인관계훈련, 문제해결훈련을 통해 길을 찾고 여가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때면 ‘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온 몸으로 실감한다고 밝혔다.

우 시설장은 “장애인들이 1시간만에 혹은 하루만에 교육프로그램 등을 터득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안되는 것을 강요하기보다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약점을 보완하고 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교육지침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월급날이 다가오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우 시설장은 가장 어려운 것으로 ‘일거리’가 줄어들 때를 꼽았다.

그는 “일거리가 줄어들거나 제품을 생산해서 판매가 안될 때, 살얼음판을 걸어가듯이 조마조마한 적이 있었다”며 “아직까지 근로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했던 적은 없었지만, 재고가 쌓이게 되면 걱정과 근심도 쌓인다”고 말했다.

우 시설장은 “이곳에서 일하는 장애인 근로자들이 고객의 귀한 손을 보호한다는 자부심으로 우수한 품질의 장갑을 만들고 있다”며 “작업장을 보호시설의 차원이 아닌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꿈이 있다”고 밝혔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울산시 제공)
시설명 생산품목 설립년도
삼남장애인보호작업장 의료세탁, 종량제봉투 1996년
중구장애인보호작업장 썬바이저후처리외 2004년
여천장애인보호작업장 면장갑 1989년
신정장애인보호작업장 현수막인쇄물 2001년
동구장애인보호작업장 자동차부품조립 2002년
북구장애인보호작업장 미용비누, 마대 2004년
어울림보호작업장 자동차부품조립 2005년
남부장애인보호작업장 면장갑 1998년
아나율장애인보호작업장 생활도자기 2009년
희망울타리보호작업장 퀼트, 비누케이스접기 2001년
메아리보람의터보호작업장 제과제빵, 미용, 카페 1986년
우리집장애인보호작업장 썬바이져, 덕터조립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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