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을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간) 푸틴 지지세력과 반대 세력의 시위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지난해 12월 총선과 올 3월 대선을 전후해 선거 부정과 푸틴의 크렘린 복귀에 반대하며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를 벌였던 야권은 이날 푸틴의 대통령 취임에 반대하는 대규모 가두행진을 벌였고, 이에 대항해 친(親)정부 성향의 정치연합체 ‘전(全)러시아국민전선’ 소속 회원들은 조직 창설 1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제 형식의 푸틴 지지 집회를 열었다.
 ◇ 강제해산된 반(反)푸틴 가두행진 = 야권은 이날 예정대로 오후 4시(현지시간)부터 시내 남쪽 ‘칼루스카야 광장’에서부터 반푸틴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참가자는 야권이 공언해온 100만 명에 크게 못미쳤다. 경찰은 약 8천명이 가두행진에 참가했다고 추산했고 현장을 취재한 이타르타스 통신은 참가자가 약 2만명이라고 보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다양했다. 좌파 정치 단체 ‘좌파 전선’ 회원들이 주류를 이뤘고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 단체 ‘솔리다르노스티(연대)’ 회원들과 무정부주의자들도 가세했다. 심지어 동성연애자 그룹까지 합류했다. 참가자들은 ‘전제정치와 권력승계는 물러가라’,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푸틴은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 등의 구호가 적힌 크고 작은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가두행진이 벌어지는 도로 주변으론 철제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경찰과 대(對)테러부대 오몬 요원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예정된 크렘린궁 인근 ‘볼로트나야 광장(늪 광장)’으로 향하는 약 2km의 도로를 따라 행진을 계속해 오후 5시 30분께 늪 광장 주변에 집결했다. 하지만 광장에서 예정됐던 푸틴 집권 규탄 집회는 결국 열리지 못했다. 집회 장소가 너무 좁아 참가자들이 모두 입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이 들어차면서 늪 광장이 혼잡해지자 경찰은 더 이상의 출입을 봉쇄했고 이에 시위 주도자들은 도로에 앉아 지지자들과 함께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일부 참가자들은 집회를 포기하고 크렘린궁 쪽으로 진출을 시도하며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시위대는 경찰에 돌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에 경찰은 이들에게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
 경찰은 도로에 앉아 연좌농성을 계속하는 ‘좌파 전선’ 지도자 세르게이 우달초프, 자유성향의 야권 인사 보리스 넴초프, 유명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 등 시위주도자들을 무질서 조장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 저지선 돌파를 시도하던 시위 참가자들도 경찰에 연행됐다.
 결국 늪 광장 시위는 무산됐고 대다수 시위대는 오후 7시께 자진 해산했다. 하지만 일부 시위대는 집회 장소를 떠나지 않겠다며 텐트들 치고 버티는 등 저항을 계속했다. 경찰은 남은 시위 참가자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경찰은 이날 모스크바 시내에서 시위 참가자 25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체포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늪 광장에서 시위 관련법을 어긴 사람들이며 이밖에 시내 지하철 역 등에서 시위를 시도하다 연행된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부상자도 발생했다. 경찰은 시위 참가자 6명, 대테러 부대 오몬 요원 12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높은 곳에서 시위 사진을 찍으려고 소방 계단을 따라 고층까지 올라갔던 사진기자 1명이 땅에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 친(親)푸틴 단체 맞불 집회 = 이날 2차대전 전승기념공원이 있는 시내 서쪽 ‘파클론나야 고라’ 언덕에서 열린 ‘전러시아국민전선’ 창설 1주년 기념행사에는 모두 3만여명이 참석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전러시아국민전선’은 지난해 5월 푸틴 총리가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을 중심으로 노조, 청년ㆍ여성 단체, 퇴역 군인 단체 등의 광범위한 사회단체들을 끌어들여 조직한 관변 정치조직이다. 이날 열린 1주년 기념행사도 7일 대통령에 취임하는 푸틴을 지지하는 집회나 마찬가지였다.
 이틀 전 야권의 반(反) 푸틴 시위 허가에 뒤이어 행사를 급조한 주최 측은 시당국의 사전 승인 절차를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시 깃발과 문장의 날’ 문화행사의 하나로 집회를 조직했다. 이에 따라 오후 3시부터 유명 가수와 연주가들이 참가하는 연주회가 열렸고 오후 6시 ‘국민전선’ 창설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행사에선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 소속 의원, 정치학자, 유명작가, 노조 대표 등이 나와 국민전선의 성공적 업적을 평가하고 지속적 발전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참가자들의 손에는 ‘나는 푸틴을 지지한다’, ‘푸틴을 위하여’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뱌체슬라프 리사코프 의원은 “국민전선은 선거를 통해 생명력을 입증했으며 많은 젊은이가 의회에 진출하는데 일조했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이 조직을 계속 키워나갈 것을 역설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7시께 모든 행사를 마치고 자진해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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