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보도 블록은 매년 어김없이 교체되는데 위험한 옹벽, 축대 등은 몇 년이고 방치되는 게 현실이다. 매년 대형 재난의 원인이 돼온 하천 등의 개량공사를 미루는 일이 습관화해 주민들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그냥 내버려 두기로 작정한 것 쯤으로 여기고 있다. 심지어는 지난해 막대한 피해를 낸 위험지역의 보수공사조차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게 허다하다. 지자체가 국민과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엇일까. 잔뜩 구름 낀 하늘을 보며 걱정하는 촌부의 얼굴을 대하면 지자체의 안전불감증과 직무유기를 탓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매년 장마철이 다가오면 지자체들은 수방대책을 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주먹구구식에 임시방편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도대체 지금이 몇년도인데 수천년 반복돼온 장마와 태풍에 미리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매번 수해를 내야만 하는가. 장마가 이례적으로 길고 태풍의 강도가 심했던 때까지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평균적인 장마와 태풍에조차 대비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예산을 써야할 데 쓰고 제대로 움직여만 주면 반복적인 여름철 재해는 많은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공사는 그렇다고 치고 당장 지난해 피해를 냈던 절개지, 축대, 누전위험 가로등, 하천과 산 주변 안전시설 등에 대한 보강공사가 제대로 됐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그러나 장마철을 코 앞에 둔 아직까지도 상당수가 방치돼 있다. 지금부터라도 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해 올해도 같은 곳에서 피해가 발생한다면 해당 지자체나 공무원에 대해서는 형사상의 책임까지 묻는 엄정한 처리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연간 강수량의 3분의 2가 6월부터 9월 사이에 집중되는 특이한 기후구조를 갖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수천년 된 얘기며 그래서 오래전부터 민관이 수리시설에 구축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21세기들어서도 여전히 매번 같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그건 변명할 여지 없는 후진국이다. 지자체도 수방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하겠지만 위험지역 주민들도 이번에는 미리 미리 수방대책을 세워 재산과 생명을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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