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의 길이를 백운산 감태봉에서 재면 47㎞가 된다. 길이로만 따지면 태화강의 발원지는 가지산이 아닌,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이다.

 백운산의 상봉인 감태봉의 9부 능선에 있는 감태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이 태화강에 이르는 가장 긴 물줄기인 것이다.

 손진호 전 두서면장(두서면지편집위원장)은 "내와리에서 탑곡을 따라 올라가면 감태바위에 이른다"며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한번도 마른 적이 없는 태화강 발원지다"고 말했다.

 감태바위는 김유신 장군이 무예를 닦아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전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바위에 찍혀 있는 여러 흔적들은 김유신 장군의 발자국과 말발굽 자국이라고 전해진다. 또 여기서 김유신 장군이 활쏘기를 익힐 때 3㎞ 가량 떨어진 경주시 내남면 양삼리의 산에 있는 바위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바위는 지금도 화살바위라 불리고 있다. 감태바위가 있는 자리는 신라시대 벽운암이 있었던 곳이기도 한데 벽운암은 빈대가 극성을 부려 없어졌다는 말만 전해진다. 절터에는 아직도 주춧돌 등 흔적이 남아 있으며 봄이 되면 꽃이 만발한다.

 봄철마다 산나물을 뜯어러 이곳을 찾는 이소선씨(67·두서면 내와리)는 "내와리에 시집온지 40여년이 지났지만 감태바위 아래에서 솟아나고 있는 물이 끊어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며 가물 때나 우수기 때나 수량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운산의 봉우리 중의 하나인 삼강봉도 태화강에 수량을 보태는 원류가 된다. 내와리 우송죽이장은 "삼강봉 꼭대기에 빗물이 떨어지면 3개 강으로 흘러든다"고 말했다. 삼강봉은 3개 강으로 물이 흘러들어가는 봉우리란 뜻이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경주시 산내면을 거쳐 낙동강의 지류를 형성하고 북쪽으로 흐른 물은 내와리를 가로지르고 복안, 활천리를 거쳐 경주, 포항으로 이어지는 형산강을 이룬다. 또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물은 내와리 탑골을 거쳐 미호리, 전읍리, 삼정리를 어우르며 사연댐을 거쳐 태화강을 만든다.

 감태바위와 삼강봉에서 형성된 물은 골짜기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계곡을 형성한다. 내와리를 거쳐 미호리로 흘러들어가는 탑곡이다. 탑곡에는 지금 봄이 한창이다. 계곡을 덮고 있는 나뭇가지마다 봄눈이 싹을 틔우고 있다. 여러그루의 버들강아지가 계곡물을 간지럽히면 봄을 재촉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제법 수량도 풍부해서 인근 주민들에게 인기 있는 피서장소이기도 하다.

 골이 깊고 물이 좋은 백운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맛과 향이 뛰어나 울산·부산·경주 인근에서 인기가 으뜸이다.

 이정자씨(54)는 "언양장날이면 약삭빠른 상인들이 타지역 산나물을 속여파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며 "내와리 각 가정은 매년 봄 1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백운산 아래 첫동네는 내와리의 탑골. 내와리는 내와리와 외와리 2개의 행정마을을 이루고 내와리는 탑골과 아네라고도 불리는 내와 2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된다.

 탑골에는 6·26를 전후해 한때 20여호에 이를 정도로 아담한 동네가 형성돼 있었으나 68년 김신조 남파사건 이후 정부에서 독가촌 관리 차원에서 철수를 권장했으며 70년대에 보급되기 시작한 전기혜택을 보지 못하자 주민들이 하나 둘 아네마을로 이주, 80~90년대에는 논과 밭만 있는 빈 마을로 변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사이 암자와 수련원, 민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현재 탑골에는 벽운암과 삼백육십오일사, 그리고 구화사, 북한의 식량난을 돕기위해 조직된 우리민족서로돕기불교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인인 법륜스님이 지은 정토수련원, 민가 1채가 있다. 민가는 부산사람인 고성연씨가 지난해 지은 신축집으로 주말에만 방문하고 있다.

 탑골에 살다가 아네로 옮겨가 살면서 농사를 지으러 다니는 김영택씨(60)는 "도로 사정이 좋아지면서 물좋고 공기 맑은 탑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며 "몇년내 작은 마을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네는 탑골에서 조금 아래로 돌아 백운산을 등지고 분지처럼 형성돼 있다. 소쿠리동네라고도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송죽씨(59)는 "소쿠리형상을 한 동네이기 때문에 흉년에도 배 곯고는 살지 않는다"며 "옛날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경주사람들이 흉년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살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외와리는 숲마을, 바데, 중점 3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 진다. 기와를 굽던 곳이 있었던 자리에서 유래된 말로 기와터에서 안에 있는 마을은 아네, 바깥에 있던 마을은 바데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내와마을이 분지처럼 산속에 파묻혀 안쪽은 "안에"의 발음 그대로 표현인 아네, "바깥에" 라는 표현의 바데라고도 한다.

 내와리는 인구변화가 거의 없다. 자연감소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네와 바데 전체면적이 144.2헥타르다. 106가구 167명이 살고 있으며 아네가 42가구 115명으로 남자가 56명, 여자가 59명이다. 바데는 66가구 152명으로 남자 77명, 여자가 75명이다. 바데가 아네보다 마을규모가 조금 더 크고 넓게 퍼져 있다.

 바데는 아네에서 작은 고개를 넘어 위치해 있다. 내와초등학교가 있었으나 지난 99년에 폐교, 현재 이곳 아이들은 10㎞가 넘는 두서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용방씨(62)는 "초등학교가 있을때는 마을의 중심역할을 해왔으나 폐교이후부터는 관리가 제대로 안돼 미관을 해치는 애물로 전락했다"며 "아이들이나 주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너무 성급한 폐교조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현재 내와초등학교부지에는 숲 자연학교가 사용하고 있다. 아네와는 달리 최근 5가구가 외지에서 들어와 살고 있으며 주말농장을 위한 외지인들의 토지구입도 점차 늘고 있다.

 내와리는 집성촌도 아닌 각성들이 모여 살지만 백운산의 넉넉한 품속에서 논과 밭농사를 위주로 계절에 따라 나물과 약초를 채취하며 사는 산골마을 전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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