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하얀 드레스와 미니원피스, 10㎝는 훌쩍 넘을 듯한 킬힐(kill heel), 화려한 레이저 조명….
 지난 6일 평양에서 첫 무대에 오른 신생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은 ‘파격의 연속’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자본주의 나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들이 공연 내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악단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지도하며 만들었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단원들의 복장. 20대 초중반으로 추정되는 10여 명의 여성은 하나같이 가슴선이 노출되거나 어깨 부분이 깊이 파인 드레스와 미니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짧은 원피스를 입은 5명의 보컬 여성이 노래하며 율동하는 장면은 이들이 남한의 걸그룹을 일부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들게 했다.
 화려한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레이저 조명 등 무대공연 역시 남한과 비교해도 그다지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진행형식이었다. 북한의 대중문화가 한결같이 추구해온 집단주의적 요소가 이번 공연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 대중문화에 대한 평가는 “고통스럽다”는 말로 요약됐다. 공연들이 한결같이 집단주의 형식과 영도자를 미화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감동과 재미가 없었다는 것.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마이크와 악기를 든 여성 한 명 한 명이 무대 위를 종횡무진 누비며 독자적인 공연에 흥겹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단체공연에서 특정 연주자가 멋진 솔로연주를 선보이거나, 드럼연주자가 흥에 겨워 몸을 흔드는 것 역시 예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장면들이다.
 공연 말미에는 ‘백설공주’ ‘미키 마우스’ 등 미국의 만화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북한 매체는 이번 공연에 대해 “지난 시기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공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다그쳐온 북한이 갑자기 이런 공연을 선보인 이유는 뭘까.
 우선은 새 지도자 김 1위원장의 ‘인민지향적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인들과 팔짱을 끼고 놀이공원 잡초를 직접 뽑는 장면을 연출한 것과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는 그러나 청소년 시절 스위스에서 생활한 김 1위원장이 자신의 문화관과는 동떨어진 북한의 경직되고 폐쇄적인 대중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추진했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들은 김 1위원장이 공연추진 배경과 관련해 ‘인민의 취향’ ‘세계적 수준’을 언급한 것은 북한의 대중문화 수준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적지 않다고 얘기한다.
 예술가 출신의 한 탈북자는 11일 “김정은이 젊은 만큼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기쁨조‘ 등을 두고 대중예술을 혼자만 즐겼던 김정일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공연에 파격적인 장면이 많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공연 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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