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신)가, 그리스는 철학이, 로마는 법과 규율이 지배하였다.

로마가 그 넓은 지역과 여러 민족을 오랫동안 다스릴 수 있었던 저력은 법이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비교적 공평하게 적용되었고 상류층의 도덕률이 일반 시민들에게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일본과 한국은 작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공통점이 있지만 일본은 단합하여 나누며 더불어 살고 우리는 개인적이며 서로가 경쟁대상으로 삼는 것 같다. 일본인은 국가나 사회를 통제하는 규칙을 믿고 순응하나 우리는 엄연히 법은 있으나 법의 룰이 일정하지 않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은 법과 질서에 익숙하지 않는데다가 법은 자유스러운 활동을 구속하고 성가시다는 생각에 지킬수록 오히려 손해만 볼 뿐 아니라 법에 걸리면 죄의식보다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희랍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신이 있었다.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서 자신의 침대에 눕혀 키를 잰 다음 키 큰 사람은 침대보다 긴 만큼 다리를 자르고 작은 사람은 다리를 잡아 당겼다고 했다. 그래서 일과성 없는 기준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혹은 잣대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에는 프로크루스테스 잣대에 버금가는 법의식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

 더구나 우리 국민은 법보다는 정서가 앞서고 그 위에 억지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과속위반으로 입건되면 자기만이 위법자로 적발된 사실이 억울하고 과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사정을 이야기해 보고 여의치 않으면 큰소리와 함께 우격다짐으로 떼를 쓴다.

 국민적 의식의 변화가 정립되는데는 3대의 가족을 거쳐야 하니 최소한 6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나라가 있었지만 왕이나 중앙정부와 직접적 관계가 거의 없었고 가족이나 마을이 주 공동체 단위로서 모든 질서와 도덕률은 그 안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범위를 벗어난 타 지방의 낯선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필요하지 않아 어떤 규범의식이나 관계설정이 미약하였다.

 따라서 동네에서만 예의바르면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전통적으로 우리 국민성은 국가나 사회적인 법과 공중 도덕에 익숙하지 않았다. 더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화 됨에 따라 타인과의 접촉은 반갑기 보다는 오히려 나를 성가시게 하고 발목을 잡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다가왔다.

 산업화 또는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국가 전체가 하나가 되고 서로간에 교통하여야 하는 협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제 작은 담을 허물고 남도 자기의 공동체에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이 과정에 법과 도덕이 공평하고 널리 자리잡아야 한다. 순간적 어려움과 본능적 욕구를 억제하고 참으면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위하고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같은 의식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돈만 가진 천민적 상층이 아닌 도덕적 의무감이 충만된 양심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민들은 풍부한 정서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민족으로서 디지털 시대에 가장 걸맞을 뿐 아니라 억압되지 않은 창의력으로 타 민족을 압도하는 한국의 힘(Fax Koreana)을 과시할 수 있는 시대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아시아의 선풍적인 한류는 우연이 아니며 한국민의 연예계 스포츠계 자질이 월등 우수할 뿐 아니라 전자, 정보 산업에 필요한 무한한 에너지가 국민들 두뇌에 잠재해 있다.

 절제되지 않는 정서와 무질서한 사회를 포용할 수 있는 법의 집행과 기본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적 하드웨어에 국민들의 무한한 창의력을 접목시킬 수 만 있다면 강대국 대열 진입은 시간 문제다. 혼란도 우리의 업이고 질서도 우리의 몫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