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면 전사(戰士)가 된다. 아무리 얌전한 인상을 갖고 있더라도 입밖으로 남녀평등이라는 말을 뱉아내는 순간 "골치 아픈 여자"로 낙인 찍히고 만다.

 남성이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면 패미니스트가 된다. 매너가 좋고 현대적 감각이 있는 "멋있고 진보적인 남자"로 사회 곳곳에서 각별한 대우를 받는다.

 남녀평등이란 말그대로 하면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동등하다고는 주장으로 이 문제를 풀기보다는 남녀 차별이라는 말로 풀어내는 것이 훨씬 쉽다. 남녀평등이라는 말보다도 "양성평등"이나 "성인지적 관점"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양성평등 또는 성인지적 관점은 그러니까, 남녀차별을 인정하자는 말이다. 남녀가 다르니까 우리 사회 곳곳에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어야 한다. 어차피 우리 사회는 남자와 여자가 반반씩 모여 있는데, 남자는 여자를 모르고 여자는 남자를 모른다. 그러니 함께 협조해서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시의 4급 공무원이 이달 말로 대거 퇴임한다. 울산시의 서기관(과장)이던 이들 가운데 여성이 2명 들어있다. 울산시의 여성 4급 3명 가운데 2명이 퇴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울산시의 여성 4급 이상은 1명만 남는다. 3급에 해당하는 개방직 여성국장이 1명을 포함해도 주요 정책을 건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여성은 2명에 불과하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말할 때 여성 공무원, 그것도 관리직 여성 공무원의 숫자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다. 성별로 비유해서 여성의 문제를 대변해줄 수 있는 대표자는 여성이 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여성이 공직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분포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는 여성공무원채용목표제를 설정해두고 있다. 정부의 방안은 오는 2006년12월까지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5급이상 관리직 공무원 중 여성비율이 10%이상이 되도록 한다고 설정해두고 있다.

 울산시도 5급이상 여성공무원을 14명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해두고 있다. 현재 울산시의 5급 이상 여성공무원은 8명에 불과하다. 이달 말에 2명이 퇴임하면 6명으로 줄어든다. 그것도 3급(개방직 보건복지국장)과 서기관인 4급(통상 과장)은 각 1명뿐이다. 울산시의 4급 공무원은 67명(일반직·2003년 1월1일 현재)이다. 그 중에 여성은 단 1명인 것이다. 이 숫자로 어떻게 울산시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위한 성인지적 정책을 펼 수 있겠는가. 걱정스럽다.

 5급이 4급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5급이 된지 5년이 경과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울산시의 4명의 4급 여성은 모두 이 조건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행정점수에 있어 유리하지 못한 입장에 처해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이른바 한직에만 있었기 때문에 점수를 따 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시는 이번 인사에서는 1명 정도는 과장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오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전향적인 검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인재 발굴과 21세기다운 자치단체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그 정도로 만족하기 어렵다. 전보다 더 많은 숫자의 여성이 과장이라는 직함으로 달고 새로운 사고로 울산시의 정책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구나 여성관련 부서에만 여성을 둔다는 고정관념도 과감하게 벗어났으면 한다.

 "20세기가 남녀평등의 씨앗을 뿌린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 열매를 맺는 시대가 될 것이다. 가정과 직장, 사회와 국가의 모든 부문에서 여성과 남성이 조화로운 동반자 관계를 이루는 일이 우리의 시대적 사명이다." 지난 2001년 발표된 "21세기 남녀평등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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