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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특집
[기획]말과 행동으로 교사의 길 제시한 ‘참교사’울산 성장의 시대-국도 7호선 시대(19)4)울산의 인텔리들 (4)박관수
1. 국도 7호선 시대- 4) 울산의 인텔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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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8.13  21: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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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의 선각자 금계 박관수
일본서 유학 후 교육자로 헌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사제지간
교직 떠나서도 사회활동 활발

일제강점기 조선 학생들이 입학하기가 쉽지 않은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조국으로 돌아와 훌륭한 교육자상을 교사와 제자들에게 심었던 금계(琴溪) 박관수(朴寬洙)는 울산의 선각자였다.

그는 고인이 된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울산의 교육자들과 제자들로부터 가장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 금계 박관수 선생이 태어났던 북구 어물동 복골 마을. 금계 선생은 고인이 된지 오래되었지만 울산에는 요즘도 그를 존경하는 교사들과 제자들이 많다.  
 

1897년 강동 어물동에서 출생했던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초 대구사범교사를 시작으로 1922년 수원고등농림학교 강사, 1939년 경기여고 교장을 지냈고 이후 총독부 장학관이 되었다.

또 해방 후 1952년에는 경북대학교 교수와 법정대학장 그리고 교학처장을 역임한 후 1952년부터 1957년까지는 울산농고와 대전고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5.16 후에는 옥천여고 교장으로 있다가 나중에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교직에서 물러나서도 그는 1965년에 단군정신선양회 회장과 신라오능보존회 총재를 지냈고 1966년 반공연맹이사장, 1970년 공산권문제연구소 이사장, 그리고 1972년 대한노인회 회장으로 일했다.

반공연맹 이사장과 공산권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북한의 노동자>, <현대 한국반공투쟁사> 등 저서를 남겨 자타가 공인하는 북한 전문가가 되었고 1966~1980년 15년간 반공연맹 이사장으로 있을 때는 당시 박정희 정권이 통치원리로 삼아온 안보우선 논리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 했다.

그가 이처럼 울산이 낳은 교육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울산보통학교와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던 그는 일본으로 가 1919년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졸업했고 1922년 동경제국대학 철학과를 수료했다.

그가 일본에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추전 김홍조의 도움이 컸다. 추전은 일제 말 조선의 부강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머리가 뛰어난 울산의 젊은이들 10여 명씩을 매년 선발해 일본에 유학을 보내었는데 이 때 그가 선발되었다. 금계 선생의 부인은 추전의 여동생으로, 금계 선생 쪽에서 보면 추전은 처남이 된다.

화려한 그의 교육경력은 때로는 주위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해방 전 대구사범교장과 수원고등농림학교 교사, 경기여고 교장 등 한국인으로 화려한 교육경력을 가졌기 때문에 해방 후에는 친일파로 몰려 반민특위에 불려다니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반면 그가 일제 강점기 대구사범 교사로 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사범에 입학해 직접 박 대통령을 가르쳐 박 대통령의 은사가 되었다. 그가 박 대통령 시절 공화당 정부가 주창한 반공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게 된 것은 박 대통령의 이런 인연과 무관치 않다.

그가 울산농고 교장으로 있었던 것은 반민특위에 피소된 직후였다. 이때 그는 반구동 서원마을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울산농고의 요청을 받아 학교로 출근하게 되었다.

오늘날 70대와 80대 어른들 중 울산농고를 다녔던 사람들은 금계 선생 아래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한결같이 “박관수 선생님이야 말로 일생을 통해 가장 존경할만한 은사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교사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당시 울산농고에서 물리를 가르쳤던 김창식(86)선생은 “박관수 선생은 울산농고에서 교사로 계시는 동안 말과 행동으로 교사의 나아갈 길을 몸소 보여준 참 교사였다”고 칭찬하고 있다.

대전고등학교에서 그와 함께 근무했던 배재상(裵在相·74)씨 역시 금계 선생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배씨는 남창 3·1운동을 주도했던 이재락의 외손자로 당시 이재락의 아들인 동립이 충남도청에서 문교사회국장을 지냈기 때문에 대전고등학교 행정실장으로 있으면서 금계 선생과 함께 생활했다. 동립은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의 사위로 일제강점기 동안 부친인 이재락과 함께 군자금 모금에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배재상에 따르면 금계선생은 대전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는 동안 교사가 아파서 결근을 하면 반드시 선물을 사들고 가 문병했는데 이렇게 교장이 직접 문병을 하니 교사가 가능하면 일찍 퇴원해 학교로 돌아왔다고 한다.

또 수첩에 도내 전문교사 명단을 항상 적어 두어 대전고 교사가 갑자기 사고로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못할 경우 전문교사를 불러와 교사 수급에 만전을 기해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있어 차질이 없도록 했다고 한다.

이처럼 학업에 모범적이다 보니 당시 대전고등학교는 지방고등학교 중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우수해 매년 서울대학교 입학생만 1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학교 운영도 모범적으로 해 학교 운영에 필요한 돈이 모자라면 다른 데서 돈을 구하지 않고 금계 선생이 직접 당시 도의원으로 있었던 사친회 회장을 찾아가 돈을 구해 와 학교운영비로 내어 놓았다고 한다.

금계 선생은 특히 대전고 교사들의 승진에도 관심을 가져 교사 인사 때가 되면 당시 충남도 문교사회국장으로 있었던 동립을 찾아가 교사들의 승진과 영전을 당부해 금계 선생이 대전고 교장으로 있는 동안 승진과 영전을 한 교사들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교사들의 승진과 영전에는 부인까지 동원했는데 그는 동립을 만나러 갈 때는 항상 부인에게 과일을 사오도록 해 과일 바구니를 갖고 도청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5·16 혁명이 일어난 후 그는 당시로서는 벽지인 옥천여고로 발령을 받았다. 그가 이처럼 벽지로 쫓겨 가다시피한 것은 군사정권 관리들이 금계 선생이 자유당과 민주당 시절 좋은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대전고를 떠나면서 한 이임사가 학생들과 교사들을 울렸다. 그는 이임사에서 “교사는 학생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교사들이 가기를 원치 않는 옥천여고로 가지만 내가 떠난 후 이 학교로 와야 할 교장이 올지가 걱정”이라고 말하면서 대전고를 떠났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당시 금계 선생이 대전고를 떠난 후 경기고 교장이 대전고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는 대전고로 오지 않고 사표를 내는 바람에 한 동안 대전고가 교장 부재로 교육행정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교직을 떠나 반공연맹 이사장과 대한노인회 회장으로 있을 때는 울산 사람들 중 서울에 가면 그의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때 그는 자신의 사무실을 찾는 울산사람들에게 대접을 잘 했다고 한다.

1980년 부산 아들 집에서 눈을 감았던 금계 선생은 아들 래창과 딸 래경을 두었다. 래창은 연세공대를 졸업한 후 언양에 ‘풍양사’라는 밧데리 충전기 공장을 차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그리고 딸 래경은 수도여사범대학(현 세종대학) 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은퇴해 서울에서 살고 있다. 중구의회 의장을 지낸 후 시의원으로 활동했던 박래환씨가 그의 조카다.

그가 태어났던 어물동 복골 마을은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이 마을을 찾기 위해서는 북구에서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한 금천 마을을 먼저 찾는 것이 쉽다.

금천 마을에서 어물동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가다 보면 금천1교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오른편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1km 정도 가면 복골 마을이 있다. 옛날에는 밀양 박씨들이 40여 가구 살았다고 하는데 그 동안 많이 이사를 가 지금은 박씨들이 많지 않다.

마을에서 보면 당사해변으로 빠져나가는 길 외에는 사방으로 산이 막고 있어 이런 벽지에서 어떻게 금계 선생처럼 훌륭한 교육자가 나왔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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