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과 인접한 언덕배기에 붉은 벽돌로 지은 학원건물에는 수십명의 학생들이 이라크전 소식을 3일이 지나서야 들을 정도로 고립된 상태에서 공부하고 있다. 학원이 있는 이 지역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학생들은 같은 방에서 자고 공동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또 이곳에는 TV와 인터넷, CD플레이어는 물론 휴대전화도 없다. 한 학생은 이곳 생활을 좀 과장해서 ●돼지우리에 있는 돼지들●의 생활에 비유했다. 남학생만 있는 이곳의 학원은 서울 인근 수도권지역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수십 곳의 입시준비학원 가운데 하나다. 이 학원에서 학생들은 매시간 공부만 하면서 그들의 장래를 결정지을 대학입학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중략)●

 미국의 AP통신은 지난 15일 휴전선 근처 산간오지에 있는 한국의 대학입시 기숙학원에 관한 르포기사를 강원도 철원발로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이 통신은 입시준비학원에서 학생들은 그들의 장래를 결정지을 대입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한달에 최고 170만원 하는 학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백화점 점원으로 나선 어머니는 월급을 몽땅 학원비에 쏟아붓는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한국에서 어느 대학을 가느냐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아주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면서 60대가 됐을때 받는 급여와 사회적 위치는 19세 때 일류대학에 합격했는지 여부가 더 영향을 미친다고 전했다.

 AP통신이 철원발로 지구촌에 타전한 이런 스파르타식 학원을 우리는 ●합숙학원● 또는 ●기숙학원●이라 한다. 이것은 ●같이 자고 먹으면서 공부하는 학원●이라는 의미다. 이 기숙학원은 가족·사회와 단절된 채 모든 것을 함께 하면 성과가 좋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제약받으면서 까지 단체생활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같다.

 외국 언론의 이런 보도를 차치하고라도 우리나라 청소년들 처럼 불쌍한 아이들도 없을 것이다. 치열한 대학입시로 고3병이 생기는가 했더니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가 확대되면서 중3병까지 생겨나는 추세에 이르렀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 가는 것은 기본이고 새벽에 등교해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아이들. 그것도 모자라 청소년기에 가족을 떠나 사회와 단절된 ●기숙학원●에서 대학입시를 위해 자신과 싸워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린다. 이렇듯 고3병과 중3병은 다른 사람에게 전염은 되지 않지만 온 가족이 함께 앓아야 하는 중병이라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건국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는 큰 줄기만 해도 10여 차례나 바뀌었고, 세부사항의 변화를 감안하면 거의 매년 입시제도가 바뀌었다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입시제도는 우리 사회에 많은 교육적 병폐와 그로 인한 파급효과 등을 낳고 있다. 흔히들 대학입시를 ●입시전쟁●이라고들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입시전쟁을 해마다 겪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같은 입시전쟁의 한 원인을 ●학벌사회●에서 찾고 있다. 성적을 비관한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는 이를 방관만하고 학벌차별을 정당화해 왔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고교평준화 폐지 움직임과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의 확대로 입시경쟁의 폐해가 고교생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고 중학생으로까지 이어져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입시전쟁이 확대돼 더 많은 우리의 아이들이 더욱 고달프게 됐다는 얘기다.

 부모가 자식사랑을 표현하는 말 중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있다. 냉혹한 사회에서 자신의 아이들 만큼은 낙오되지 않기를 기대하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치열한 입시전쟁에 내몬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줄 획기적인 입시제도는 요원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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