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내를 지나 남목고개를 넘어 동구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마을이 남목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남목 1, 2, 3동까지 나눠져 있지만 법정동으로는 동부동에 속한다. 좌우에 동축산과 봉대산을 끼고 있고 앞에는 염포산이 버티고 있다. 한적했던 논농사와 고기잡이가 전부였던 이곳 남목은 현대중공업이 들어선 이후 크게 변했다. 산과 들이 만나는 곳에 흩어져 있던 집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삐쭉한 아파트 건물들 천지가 됐다.

 남목에서 주전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언양 김씨 회관 겸 재실이 자리잡고 있다. 세월의 때가 묻은 고색창연한 재실과는 달리 현대식 회관 겸용 재실이다. 재실에는 중시조인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 장군을 모셔두고 있다.

 위열공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인 언양군(彦陽君) 선(鐥)의 7세손이다. 언양 김씨들은 언양군(彦陽君)을 시조로 모시고 있어 결국 김알지(金閼智)계 김씨이다. 선이 고려 태조인 왕건으로부터 언양군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언양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 뒤부터 후손들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서 벼슬을 한 뒤 고향인 언양에 낙향했다. 위열공도 무신정권기에 끊임없이 침입해온 거란군을 격퇴하고 "1인지상 만인지하"의 자리인 문화시중을 지낸 뒤 언양으로 돌아와 숨을 거뒀다.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산 15번지 화장산 기슭에 자라잡은 위열공의 묘는 울산시 기념물 35호로 지정돼 있다.

 언양 김씨는 위열공 이후 또 한명의 걸출한 무인을 배출한다. 임진왜란때 대표적 의병장인 문열공(文烈公) 김천일(金千鎰). 한성부 서윤과 수원부사를 지낸 뒤 나주에 낙향했다 거병해 수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왜군의 2차 진주성 공략에 맞서 싸우다 아들 상건(象乾)과 함께 진주 촉석루에서 남강에 몸을 던져 순사했다.

 언양을 식읍으로 받아 누대로 뿌리를 둔 언양 김씨의 찰방공파(察訪公派)가 남목에 터를 잡은 것은 병자호란 등 끊임없는 외침 때문. 고려왕실의 외척으로서 울산지역의 대표적 토성이었던 언양 김씨는 310여년전 외침을 피해 집안 전체가 언양을 떠나 굴하, 병영을 거쳐 남목에 이른 것. 족보위원장을 지낸 32세손 병식(82) 옹은 "9대조인 종택(宗澤) 할아버지가 어릴 때 등에 업혀 이 곳으로 와 청주 한씨(淸州 韓氏) 집을 얻어 산 게 남목에 언양 김씨들이 집성을 이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뒤 세상이 조용해 지자 집안의 일부는 언양으로 돌아갔다.

 "입향조가 남목으로 이주할 당시에는 남목에는 청주 한씨와 월성 이씨(越城 李氏·지금은 경주 이씨(慶州 李氏)라고도 함) 몇몇 집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병식씨는 전했다.

 병식씨는 "예전에는 남목에만 문중들이 70여집이나 있어 둘레둘레가 다 집안이었는 데 지금은 20여 집이 남았지만 전국적으로는 2만5천여세대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울산시로 승격되고 동구 미포만에 현대중공업이 자리잡으면서 현대중공업의 성장에 따라 언양 김씨의 집성촌으로서 남목은 점점 좁아져 간 셈이다. 그래도 아파트촌 길목 도로가에 재실이라도 있어 그나마 집성촌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울산의 대표적 토성으로서 고려 왕실의 외척이었던 언양 김씨는 위열공과 문열공 등을 비롯해 "삼국사기"를 엮은 김부식 등 고려와 조선조에 문무에 많은 선조들을 뒀다.

 또 현대에는 남목 출신으로 외무장관을 지낸 김동조(86) 전 장관이 있다. 김동조 전 장관은 수협중앙회를 거쳐 공화당 조직부장을 지낸 병식씨와는 열촌간이며 족보에는 병(昞)자 항렬이다. 지난 대선에 출마한 정몽준(국민통합21·울산동) 의원 부인인 김영명씨가 김동조 전 장관의 둘째 딸이다. 또 김종호 전 동래고 교장을 비롯해 김지호, 김정호 전 교장들과 함께 정년퇴임한 울산시 김종휘 전 사무관도 다 같은 언양 김씨들이다. 이밖에 울산지검 검사를 지낸 김낙구 변호사와 동서식품 김재명 전 고문, 그리고 도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한 김병수씨도 언양 김씨 문중 출신들이다.

 이밖에 현재 중구문화원 김철 원장과 동생인 울산시의회 김철욱 의장도 고향은 남목이 아니지만 언양 김씨로 취려 할아버지들의 후손들이다. 서찬수기자 sgij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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