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로존에서 독일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세계 3위의 수출 대국이자 제조업 강국이라는 명성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병든’ 유럽 국가들을 구제하기 위한 핵심 결정 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문제를 놓고서도 유로존 국가들이 독일만 바라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지만 정작 독일 권력 상층부의 최대 걱정거리는 그리스가 아닌 중국이다.
 중국인들이 독일산 공작기계나 자동차에 더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2030년에는 어떤 분야에서 제조업 강국이라는 명성을 이어 가야 하나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 이 때문에 2020년 이후부터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등도 독일 정치인들을 고민에 빠트리는 숙제다.
 그리스 같은 나라에서는 ‘그런 고민을 좀 해봤으면 좋겠다’라고 여길 법한 문제들이다.
 독일이 이같은 상황을 누리게(?) 된 것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집권 기독교민주당(CDU)과 바이에른주 자매정당인 기독교사회당(CSU)의 지지율은 35~39%로,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SPD)의 지지율(26~30%)을 훨씬 상회한다.
 경제전문 잡지 포브스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1위 자리를 매년 고수하는 메르켈 총리는 능수능란한 정치 수완, 결단력, 보통의 독일인들이 가지는 우려에 대한 남다른 감각 등으로 추앙받고 있다.
 유로존 위기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메르켈 총리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다소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는 오히려 자국민에게는 ‘신중함’으로 비춰지면서 총리에 대한 국민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제개혁에 실패한 다른 이웃 국가들을 돕는 무책임한 정책으로 인해 독일 경제가 자칫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 독일인들의 일반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독일 주재 한 대사는 “메르켈의 성공 요인은 그녀가 납세자들의 수호자로서 자신을 포장하는 방식에 있다”며 “유로존의 구제금융안을 논의하면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마지못해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모습도 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그리스 구제금융 문제와 관련해서도 메르켈 총리가 그간 보여온 행보는 일종의 ‘자기 포장’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독일 관리들은 “다른 유럽 국가들이 그리스를 유로존에 남게 할 것이냐를 놓고 여전히 격론을 벌이고 있지만 독일은 사실 그리스를 남게 하자는 쪽으로 일찌감치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정치권 내에서도 메르켈 총리의 대(對) 유럽정책 지지율은 여·야를 막론하고 매우 높은 편이다. 독일에서 ‘강한 유럽주의’는 정치적 신조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당과 같은 좌파 정당 내에서도 “메르켈을 대신할 인물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유럽정책에 관한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확고하지만 보수 언론 등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의 오피니언란 담당 편집자 모리츠 슐러는 “물건을 살 여력도 없는 그리스인들에게 메르세데스 자동차와 보쉬 냉장고를 팔고 있다”며 메르켈의 유럽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범했던 실수를 그리스에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능도 하지 않는 시스템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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