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25행사때 울산여상 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르려니 목이 매어 가끔 헛기침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는 밀려오는 상념들을 떨칠 수가 없었다.

 6·25 사흘만에 서울이 실함되자 부랴부랴 부산으로 임시수도가 옮겨졌고, 부산은 반격의 거점이 되었다. 이에 이웃한 울산 또한 그에 못지않게 부산하였다.

 울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7번 국도는 남하하는 피난민과 북진하는 군용차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학교들은 대부분 육군병원으로 징발되어 구급차로 가득 찼으며, 거리는 걸음 바쁜 군인들로 넘쳐났다. 포항, 안강, 영천으로 이어지는 전선이 형성되면서 울산사람들은 더욱 불안·초조했으며 희생 또한 컸다. 총쏘는 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채 전선에 투입돼 군번도 없이 전사한 청년도 있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19년전 간첩선으로 침투하려다 실패한 부산 다대포에 북한인 수백명이 거선을 타고 나타났다. 간첩선을 잡노라고 쏘아대는 총포소리에 놀라 떨었던 다대포 주민들이 그들 북녘 응원단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남녘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으로 기를 돋군 그들은 7번국도를 달려 울산에까지 의기양양하게 나타났다. 그들은 문수구장, 동천체육관 등을 누비며 인공기를 마음껏 흔들어댔다. 때로는 남북선수나 응원단들이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춤추며 노래부른다.

 깜깜한 밤 남북의 군인들이 백병전으로 뒤엉켜 구르며 서로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결투한 6·25.-밝은 낮에 남북의 선수들이 부둥켜 안고는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부산아시안게임.

 이것이 50년의 시공을 사이에 둔 남북 젊은이들이 겪고 누리는 운명이라면 50년전에 젊었던 우리는 너무나 그 운명이 안쓰럽고 초라하지 않는가.

 올해 6·25 53주년행사가 알차게 펼쳐졌다. 참전용사회의, 53주년기념식, 호국걷기대회, 전후세대와의 교육적 만남, 그리고 참전용사들의 호국순례 등이 격일로 이어졌다.

 호국순례로 마지막에 들른 영천의 국립호국용사묘지. 그곳에 허리 구부러진 늙은 용사들이 기웃거렸다. 그들은 명예로운 종착지를 사전답사하는 듯 했다.

 "귀하는 6·25전쟁시 참전하여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가발전에 헌신했으므로 그 명예를 선양하기 위해 이 증서를 드립니다." 얼마 전에 대통령 이름으로 받은 6·25참전용사증서다.

 우리의 희생이 값진 거름이 되어 오늘의 영광된 조국으로 꽃피웠으며 멀지 않은 날에 통일을 열매맺게 할 것이라 굳게 굳게 믿어 본다. 이춘걸(울산시 남구 신정1동. 6·25참전용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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