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의 잔혹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역사는 ‘마루타’를 이용한 생체실험일 것이다. 한국인, 중국인, 몽골인, 러시아인 등 항일 운동가나 전쟁포로 3천여명을 마루타로 삼아 자행됐던 갖가지 세균실험과 약물실험, 생체 해부실험. 이러한 천인공노할 만행은 관동군 제731부대에 의해 1936년부터 1945년 여름까지 극비리에 이뤄졌다.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반인륜-비인간적 폭력으로 각인된 이유는 바로 산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아닐까.

국산담배 암유발 은폐

 KT&G로 이름을 바꾼 옛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담배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각종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도 25년 동안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국가를 상대로 진행중인 ‘담배소송’의 원고측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가 최근 주장한 내용이다. 그는 “KT&G 중앙연구원이 보관중인 1978∼2000년의 295건 자료를 조사한 결과 국산 담배에 발암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다는 연구 내용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배 변호사는 “연구원측 자료에 따르면 담배연기 성분 중 하나인 벤조피렌은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화학물질이며, 국내 담배의 벤조피렌 함량은 비교적 높은 것으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담배연기 성분 3천900종 중 발암성이 있거나 독성이 강한 물질이 40종임을 인정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가 담뱃값 인상이 금연을 유발한다는 공식을 앞세워 대폭적인 가격인상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정부부처가 흡연 반대론자들을 등에 업고 담뱃값 인상 반대론자들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말인 모양이다. 복지부는 담뱃값 인상과 금연율과의 상관 관계를 정리, 과학적 데이터 에 입각한 담뱃값 인상폭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금연효과와 재원조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복안인 셈이다.

 1일부터 금연구역 확대로 건물내 흡연이 전면 금지되고 있다. 금연구역 및 시설 표시위반과 구역지정 위반사례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면서 온갖 진풍경이 빚어지고 있다. 애연가들은 가정에서는 안방에서 베란다로 내몰리고, 회사에서는 사무실에서 건물 밖이나 옥상으로 추방되고 있다. 대형식당, PC방, 만화방 등의 업주들은 영업장 절반 이상을 금연구역으로 만들어야 하는 인테리어 비용부담과 매출감소가 여간 걱정이 아니다. 애연가들을 위한 금연장려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에다 담배피는 사람을 신고하는 ‘시파라치(ciparachi;cigarette+paparachi)’등장을 예언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애연가들은 죄인아닌 죄인이 된지 오래고, 스스로의 "의지박약증"을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 써보지만 여간 힘겹지 않다.

세수확대-흡연규제 두 얼굴

 금연운동이 성과를 거두는 반면 흡연자들은 갈수록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려면 맛 있고 건강에도 좋은, 무해한 담배를 개발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가족들과 직장동료, 국가에서 오히려 담배를 권장할 것이지만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담뱃값을 올릴 때마다 국민건강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소비량이 과연 줄었는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의문을 갖고 있다. 담배가격을 올리면 끊거나 줄여서 금연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나 통할 말이다. 200원짜리 솔 담배도 비싸서 꽁초 주워서 피워야 하는 저소득층에게 서글픔만 안겨줄 것이다. 겉으로는 국민건강을 내세우면서 담배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25년 동안 숨겨온데 대해 해명과 반성부터 해야 한다. 담배는 팔면서도 흡연을 규제하는 정부정책의 이중성에 KT&G 폐지론이 고개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비싼 돈에 죄의식을 갖고 피게 한다면 담배를 마약화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수많은 애연가들을 더이상 정부의 세수확대를 위한 마루타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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