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의료 사각지대 해소돼야-②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서울 도봉구 쌍문동 다세대주택의 지하 창고방. 지난해 11월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나랏 윌리엄 바리안(46)씨는 빛이 잘 들지 않는 쪽방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바리안씨가 평소에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었고, 주검에서 외상이 발견되지 않아 갑자기 병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바리안씨는 비자가 만료된 2005년부터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살아왔다. 양말 공장에서 일하면서 번 돈의 대부분을 필리핀의 가족에게 송금했다. 건강보험이 없어 치료비가 많이 드는 데다 불법 체류자 사실이 발각돼 추방될까봐 병원은 엄두도 못 냈다.

건강보험 직장가입 의무 불구
10% 미가입·18% 가입여부 몰라

산재 신청시 회사 거부·해고 두려워
결국 본인이 의료비 내는 경우 많아

울산이주민센터 산재처리과정 상담
매주 일요일엔 무료 진료소도 개소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주 인권가이드라인 구축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1년 4월 기준, 미등록 체류외국인은 16만8545명. 전체 총체류자 135만4414명의 12.4%에 해당한다.

 

▲ 이주노동자의 의료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울산이주민센터는 매주 일요일마다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펼치고 있다. 울산이주민센터 제공

실태조사에서 유엔이주인권측은 “산업재해로 인해 장기치료를 요하는 혹은 영구적인 장애를 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아무런 보상 없이 치료 직후에 한국을 떠날 것을 강요받은 사례도 지적됐다”고 밝혔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해 바리안과 같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유엔에서 보장하는 기본 권리에도 어긋난다.

울산이주민센터 조은정 사무국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간단한 병원 치료를 받아도 몇 만원이 넘게 나온다”며 “아파도 병원이 아닌 약국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34% “정기건강검진 못받아”

미등록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직장가입을 해주어야 하는 당연 가입대상자 가운데서도 전체의 10%는 건강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았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지난해 5월1일부터 31일까지 전국의 931명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의 10%의 이주노동자는 건강보험(표2 참조)에 가입이 안됐다.

건강보험 가입 여부를 모르고 있는 응답자도 18%를 차지했다. 건강 보험에 대한 문제가 있으면 문제해결을 위한 절차를 모른다는 답도 전체의 63%를 차지했다. 의무적으로 받는 정기 건강검진은 응답자의 34%가 받지 못했다.

협의회는 “내국인도 기피하는 소위 3D업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에 있어 취약성이 드러났다”며 “건강권을 침해하는 법 위반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감독이 요구되며,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초기 입국 후 전용보험 가입과 함께 건강보험가입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재치료 취약…본인부담 47.5%

이주노동자들은 보장받지 못하는 산재에도 노출돼있다. 협의회에 따르면 산재 경험자의 산재 치료 방법(표1 참조)에 대해 본인이 전액 부담했다는 응답이 30.7%로 높게 나왔다. 사업주와 공동 부담도 16.8%로 나와 이주노동자의 47.5%가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보험 처리의 어려움에 있어서도 회사의 거부가 34.9%를 차지하고, 처리과정이 복잡하다는 응답이 24.0%,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20.9%, 인정기간이 너무 길다가 20.2%를 차지했다. 진료비와 보험절차에 있어 2차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뜻이다.

울산이주민센터 조은정 사무국장은 “센터에 산재 관련 상담이 일주일에 1건씩 발생한다”며 “이중 절반 정도만 산재가 승인이 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건강보험은 의무화되어있기 때문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가입돼있다”면서 “의료상담은 산재치료와 산재보험을 처리하는 과정의 상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통증을 호소하는 부분은 어깨와 팔, 허리 등이다. 조 사무국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 달에 600~700시간씩 일을 하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이 빈번하게 나타나난다”며 “사업장의 환경 탓에 분진으로 인한 호흡기질환도 많다”고 했다.

산재에 노출될 위험성을 줄여주는 산업안전교육도 절반 정도만이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협의회의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산업안전교육을 받은 사람은 체류기간 1년 41.3%, 2년 31.4%, 3년 54.1%, 4년 47.1%, 5년 42.2% 등으로 조사됐다. 직장 내 모국어로 된 안전수칙이 있는지 여부에서도 21%만이 ‘있다’고 응답을 했다. 국가별로 보면, 필리핀 60.9%, 태국 35.1%, 인도네시아 27.9% 순이었다.

협의회는 “산업안전교육은 모국어 안전수칙이 꼭 필요한 제조업 분야와 소규모 회사(종업원 규모 1~5명), 체류기간 1년차에서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제조업 분야, 소규모 회사, 1년차에게 모국어 안전수칙 보급 확대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울산이주민센터, 매주 일요일 무료진료

울산이주민센터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 진료소를 연다.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무료 진료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를 위해 마련됐다. 1년에 치과와 내과 등 1000명이 무료 진료소를 다녀간다.

조 사무국장은 “치과의 경우, 진료비가 비싸기 때문에 무료진료소를 찾는 인원이 1년에 700여명 정도 된다”며 “현재 울산에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여는 곳은 울산이주민센터 뿐”이라고 밝혔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제공
 

<표1> 이주노동자의 산재치료 방법
 방법 비율(%)
 본인전액부담 30.7
 산재보험 처리 19.7
 사업주가 전액 치료비 부담 18.4
 사업주와 본인 공동부담 16.8
 건강보험 처리 11.9
 민간 이주민 지원단체 해결 2.5
 합계 100.0

 

<표2> 건강보험 가입여부
 내용 비율(%)
 건강보험 가입 72
 건강보험 미가입 10
 건강보험 가입여부 모른다 18
 합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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