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등불이 없는 들길을 걸을 기회가 있었다. 울산에서 20km 거리의 대운산 기슭에 올망졸망하게 벼가 심어진 논길이었다. 불현듯 별빛이 쏟아지듯 비상하는 반딧불이 무리가 나타나 나그네의 발길을 막았다. 귀중한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야! 하고 탄성이 나왔으나 소리는 자꾸 안으로 숨어들었다. 산골짜기의 정적을 깨고 그들의 잔치를 방해하면 어렵사리 찾아온 귀한 손님이 발길을 돌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꿈같은 현실이었다.

 반딧불이는 밝은 세상이 싫어 밤에만 나타나는 신비한 곤충이다. 별빛이 쏟아지는 여름밤 반짝이는 등불을 안고 숨바꼭질을 하며 짝을 찾아 헤매다 짝을 만나면 사랑을한다. 어린 시절 개똥벌레라 부르던 반딧불이는 개울물이 아무리 맑아도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심심산골에는 살지 않는다. 모깃불을 피워놓고 밤하늘의 별을 헤는 사람들이 사는 시골, 개짓는 소리가 들리고 퀴퀴한 소똥 냄새가 풍기는 곳, 텃밭에 심은 감자에 흰 꽃이 피고 농약이 없어도 상추와 열무·배추가 초록빛으로 무성한 곳, 언제나 사람 냄새가 풍기고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민가 근처에 반딧불이는 산다.

 반딧불이는 깨끗한 환경 속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왔고 어린이들에게 신비와 호기심을 유발해 과학 교육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생태계의 관찰로 청정환경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또 반딧불이의 발광 유전자는 생명공학의 중요한 유전자원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필자는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반딧불이에 대한 강한 추억을 갖고 있어서인지 지금도 반딧불이를 유난히 좋아한다. 산업공해의 오염도시로 낙인찍힌 울산에 반딧불이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해 여름, 여러번 반딧불이를 찾아 변두리 곳곳을 밤손님처럼 쏘다녔다.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석남사 계곡, 삼동면 보삼마을 계곡, 범서읍 서사리 연동마을 등지에서 반딧불이의 화려한 비상을 목격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제는 확인된 곳만 해도 수십 곳에 달하고, 변두리뿐 아니라 도심의 아파트 단지에까지 반딧불이가 간간이 나타난다는 소식이다. 공해도시로 낙인찍힌 울산의 여러 곳에 반딧불이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반딧불이는 등불을 밝히고 밤에만 나타나는 단순히 신비한 벌레로만 보아 넘길 수 없는 곤충이다. 어릴 때 헤어진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운 반딧불이는 언제나 동심과 추억을 불러일으켜 세파에 시달려 피곤한 나그네에게도 잠시나마 행복을 느끼게 한다. 공해가 없고 물이 맑은 청정지역이어서 사람답게 살수 있는 곳이란 메시지를 전해준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농촌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쾌적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되살려 보존하라는 반딧불이의 경고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세속의 화려한 꽃이나 꿀은 탐하지 않고, 밤이면 별빛같은 불을 밝히고 산천을 헤메며 낭만을 뿌리는 불나비(firefly), 반딧불이는 쾌적한 환경을 희구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꿈의 등불이다. 특히 산업공해에 찌든 이 고장엔 희망의 등불이 아닐 수 없다.

 몇년 전 경기도 양평군의 반딧불이 축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양평군은 서울시로부터 상수원 관리예산으로 해마다 300억원을 지원받고 있었다. 양평군은 그 예산으로 청평댐 상류 양수리 주위에 즐비하게 들어선 러브호텔의 생활하수를 비롯한 수자원과 자연환경 관리에 행정력을 쏟고 있었지만 각 면마다 반딧불이 마을을 지정해 반딧불이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친환경 농업정책이 더욱 감동적이었다. 반딧불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군에서 마련해준 상표가 붙어 고가로 판매되고 있었다. 무공해의 청청 농산물로 보증되기 때문이었다.

 울산이 공해 걱정없는 쾌적한 도시가 될 수 있다는 반딧불이의 메시지가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울산에도 반딧불이 마을이 여러 곳에 생겼으면 하고 소망해 본다. 반딧불이가 여름밤 하늘을 수놓아 주는 한 울산은 산업공해를 극복하고 살아갈 가치가 있는 터전임을 증명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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