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나서서 "조폭"을 엄단하겠다고 한다. 민주적이고 이성적인 사회라면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지난 국민의 정부 이후 우리나라는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으로 태평성대를 누리는 듯하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조직폭력이 사회 구석구석을 장악하여 음산하기 짝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제는 웬만한 소도시의 뒷골목에도 무슨 파니, 무슨 조직이니 하는 폭력배들이 설친다. 술집은 물론 공사현장, 재건축 조합 언저리를 포함한 이권이 있는 주변에 이들의 독버섯이 퍼지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다. 경찰과 검찰은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왜 지금에 와서야 조폭을 엄단한다고 야단들인지 모를 일이다.

 조직폭력배란 개인의 폭력이 떼를 이루는 것으로 더 과격하고 무자비하며, 집단적 위해를 가한다. 보통 시민들은 조폭이란 말만 들어도 두려움을 느낀다. 서진룸싸롱 사건에서부터, 배신자를 처단한다며 동료를 살해하여 시신을 불태우고 일부는 먹기까지 한 인간이기를 포기한 폭력조직의 과거 행적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폭력성이 내재한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 학계의 거목인 거버너 같은 이들은 일찍이 이 본능적인 폭력성향에 주목하여 그 원인과 처방을 설파한 바 있다. 즉 사람에게서 폭력이란 쓰면 쓸수록 더욱 큰 폭력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적합한 폭력의 행사를 조율하면 폭력성이 정화가 되어 가라앉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폭력성이 길러지는, 이른바 배양되는 것도 매스미디어를 통해서이며, 폭력성을 정화시키는 것 또한 신문방송, 영화, 오락 등 매스미디어라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언론과의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 겨루기의 핵심은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부여받은 참여정부의 권한에 일부 언론이 이유없는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일부 언론이라 하더라도 이유없는, 그리고 근거없는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그 폭력제거의 궁극적인 목적을 모르는 것 같다. 적어도 국민의 안방까지 버젓이 들어앉아서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내용을 토해내는 폭력물에 무감각한 것을 보면 모르는 것이 확실하다.

 특정 내용을 거론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을 직시하자니 어쩔 수 없다. 요즘 모 방송 드라마 중 〈야인시대〉란 것이 있다. 이 드라마는 전편을 통하여 엄청난 폭력을 시청자 앞에 토해내고 있다. 그 중 전설적 주먹인 시라소니를 동대문사단의 폭력배들이 집단으로 린치를 가하는 장면은 아무리 흥미를 끌어야 하는 드라마라 할지라도 폭력성의 도를 넘었다.

 언론이 권력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야단인 참여정부는 공중파 TV가 국민에게 가하는 상상을 초월한 폭력을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방비 상태에 내팽개친 폭력학습은 단지 15세 이상 시청하라는 화면상의 동그라미 하나로 제 소임을 다하는 것으로 보는 지 묻고 싶다.

 대부분 조직폭력배의 행동파들은 그 나이가 점차 청소년층으로 낮아지고 있다. 고교를 갓 졸업한 연배가 주류를 이룬다. 실로 평생교육에 다름아닌, TV의 엄청난 "범죄대학", "폭력대학"을 이대로 둘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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