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2년 7개월 만에 달러당 90엔선으로 하락하면서 일본 산업계에 희비가 갈리고 있다.
 엔화 가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대규모 경기 부양과 무제한 금융완화 방침으로 급락했다.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승리한 작년 9월 26일 달러당 77.71엔이었던 엔화 가치는 자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아베가 총리가 된 작년 12월 16일 83.70엔, 17일(현지시각)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장중 90엔으로 하락했다. 4개월도 엔화 가치가 15%나 추락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엔저의 지속이 일본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연합회의 사토 야스히로(佐藤康博) 회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경제에 가장 좋은 것은 달러당 90엔 가까이가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달러당 100엔을 넘으면 경제에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상공회의소의 오카무라 다다시(岡村正) 회장도 “적정 환율 수준은 달러당 85∼90엔이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 제조업체들이 장기간 지속된 엔고로 생산 기반을 아시아 등 해외로 이전하면서 엔저의 메리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제조업의 해외 생산 비율은 1990년 6.0%에서 2010년엔 18.1%로 높아졌고 이런 추세는 가속하고 있다.
 엔저로 수혜가 기대되는 제조업의 비중은 1990년 26%에서 2010년 19.4%로 떨어졌다.
 평면TV 등 디지털 가전제품은 2010년부터 수입이 수출을 상회하고 있다. 해외 조달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식품업체나 유통업체도 엔저를 우려하고 있다.
 일본 종합연구소는 연간 평균 환율이 달러당 90엔일 경우 전력회사의 연료 수입 영향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6% 정도가 해외에 유출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간 약 3조엔 이상의 국부 유출이 이뤄진다는 계산이다.
 이 연구소의 후지이 히데이코(藤井英彦) 이사는 “현재의 무역구조로 볼 때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경기가 하강할 우려도 있다”고 경고했다.
 재작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국 원전 대부분이 가동 중단되면서 연료를 액화천연가스(LNG)에 의존하는 전력업계는 엔저가 치명적이다.
 전력업계의 작년 발전용 연료 조달비는 6조8천억엔이었다. 2010년의 2배에 달한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연료 수입 부담이 늘어난다.
 스미토모상사의 다카이 히로유키(高井裕之) 에너지 본부장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하락할 경우 일본 전체의 천연가스·석유 등 연료 수입 비용은 2천750억엔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휘발유 가격이 올라 소비자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휘발유의 전국 평균 가격은 현재 리터당 151엔으로 8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엔화 가치하락이 유가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은 “달러당 85∼90엔 정도에서 환율을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엔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좋으냐 하면 일본의 산업구조상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게이단렌(經團連)의 전 회장인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은 달러당 95∼105엔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사장과 카를로스 곤 닛산 사장은 달러당 100엔이 적정 수준이라고 말했다.
 도요타, 닛산, 캐논 등은 모두 국내에 핵심 생산 기반을 갖고 있어 엔화가 떨어질수록 이익이 커지는 회사이다. 도요타의 경우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하락하면 연간 350억엔, 닛산은 200억엔의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있다.
 일본 정부는 엔저 기조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베 총리와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경제재생상 등 경기 부양론자들은 엔화 가치가 여전히 고평가됐다는 시각이다.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과도한 엔저에 대해 우려했던 아마리 경제재정상은 17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는 “과도한 엔고가 시정되는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을 바꿔 엔화 약세를 유도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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