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객사 태화루, 건립에서 철거까지](하)태화루의 철거
울산의 고적 헐값에 경매로 처분
학성이씨 소장 편액 박물관 기증

▲ 태화루 현판.

1923년 2월부터 태화루 건물은 울산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태화루 건물의 보존과 활용에 대해 논란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결국 건물이 헐리고 말았다.

태화루는 학성관 건물이 이미 1934년 철거된 상태에다, 늘어난 울산공립보통학교 학생 수에 따른 운동장 부족난으로 철거 위기에 몰렸다. 1930년대 말 태화루 보존문제는 울산 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1939년 10월7일자 동아일보에는 ‘태화루 보존결정’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내용은 태화소학교 정문으로 사용되고 울산도서관으로 되어 있던 태화루를 학교 운동장 확장으로 전체를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유서깊은 태화루를 보존하라는 대다수 읍민들의 여론이 높아, 임(林) 군수는 태화루 보존에 착수해 1500원을 내어 학성공원으로 이전해 ‘울산 물산진열관(物産陳列館)’을 겸하게 하여, 태화루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 군수가 진양군수로 옮기게 되어, 후임자인 호리요(堀米) 군수에게 전임 군수의 결정안을 실현시켜 주기를 2만 읍민이 기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 울산박물관 김우림 관장이 지난 2월 이휴정을 방문해 태화루 현판 등 유물을 박물관에 기증한 학성이씨 월진문회 이채관(오른쪽) 회장과 이채욱(왼쪽) 상무에게 VIP카드를 전달했다.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이렇다. 먼저 학교 운동장 확장 때문에 태화루를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태화루를 보존해야 한다는 울산 읍민들의 여론은 매우 강했다. 이에 임(林) 군수는 학성공원으로 이전해 전시관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태화루를 보존하고자 했다. 그런데 임 군수가 진양군수로 전근을 가고 새로운 일본인 군수가 부임하게 되면서, 울산 사람들은 신임 군수가 전임 군수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되었고, 본래 계획대로 지켜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여기서 태화소학교는 1938년 울산공립보통학교의 바뀐 이름이다. 임 군수는 이름이 임헌평(林憲平)으로, 경성제국대학 법학부와 일본 경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3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고, 1935년 의령군수를 역임했으며, 1937년 울산군수에 부임했다. 해방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했고, 한국손해재보험공사 사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호리요(堀米) 군수는 이름이 堀米和雄인데, 조선총독부 관보에 따르면 1939년(소화 14년) 10월1일자로 임헌평 군수 후임으로 울산군수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1940년 5월10일자 동아일보는 ‘울산 유일의 고적, 태화루 보존 난(難)’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내용은 울산 유일의 고적으로 남아 있는 태화루는 수십 년 전에도 그 존폐 문제가 있었으나, 현 태화소학교 정문으로 보존해 왔고 그 누상은 울산 유일의 도서관으로 사용하게 되어 태화루 보존은 영구하리라고 일반 군민은 자못 안도하고 있었는데, 근래 태화소학교 운동장 협소로 확장하게 되면 부득불 처분치 안하면 안 되게 되어, 태화루는 다시 존폐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어, 임 군수의 판단으로 영구히 보존하고자 수천원을 내어 현 울산공원에 이전케 하고 울산 수산(水産)농산(農産)물산(物産) 진열관으로 사용하려고 해서 일반 읍민의 격찬을 받았다. 그런데 임 군수가 진양군수로 영전케 되어 현 호리요(堀米) 군수가 부임하자 이 안은 포기하게 되어 처분케 되어, 지난 초순에 태화루를 경매에 부쳐 1500원이란 헐값으로 울산읍 이채일(李埰一)씨에게 낙찰돼, 5일부터 전체를 허물게 되니 일반 읍민이 애석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태화루 철거에 따른 보도였거니와, 철거 과정을 정리했다. 태화루 철거 논의가 있었으나 도서관으로 사용되면서 읍민들이 태화루가 영구히 보존될 것으로 믿었던 분위기, 학교 운동장 부족에 따라 철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해 임 군수의 판단으로 수천원을 내어 태화루를 학성공원으로 이건(移建)해 전시관으로 활용하면서 보존하려 했던 사실, 신임 군수가 전임 군수의 계획을 지키지 않고 철거해 건축 부재를 경매를 통해 팔아버린 상황, 낙찰 금액, 낙찰자, 그리고 울산 읍민들의 태화루 철거에 대한 심정 등을 알 수 있다.
 

▲ 신형석 울산대곡박물관 관장

요컨대 오랜 세월 울산 역사와 함께 해 왔던 태화루는 1940년 5월5일부터 헐리게 됐다. 그 목재는 이후 학성 이씨 정자인 이휴정(二休亭)을 건립하는데 사용됐다. 이로부터 태화루 편액은 학성 이씨 월진문회에서 보관하게 됐다.

울산박물관 개관을 얼마 앞두고 학성 이씨 월진문회 이채관 회장은 70년간 소장해 왔던 편액을 울산박물관에 기증했다. 2011년 6월 울산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이 편액은 역사관에 전시되었거니와, 이 자료에 대해 울산 시민들이 보였던 관심은 뜨거웠다. 태화루가 울산 역사에서 중요한 건물이었기에 비록 건물은 사라지고 없지만, 편액에 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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