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가 31일로 예정된 대국민 절전 호소 담화문 발표를 돌연 연기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담화문 발표를 예고한 지 이틀만에 나온 결정이어서 정부내 의사결정 과정에 또 한번 혼선을 드러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발표 연기에 대한 정부의 공식 해명은 여름철 전력대란 우려의 단초인 원전 위조부품 사태를 먼저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애초 알려진 것보다 원전 비리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섣부른 담화보다는 철저한 원인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는 데 청와대와 총리실 측의 입장이 ‘뒤늦게’ 일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진상을 철저히 밝히는 것이 선결문제라고 생각해 먼저 진상규명을 한 뒤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신고리와 신월성 원전 6기의 원자로에서 시험성적표가 위조된 엉터리 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 전력 성수기를 앞두고 대규모 원전 가동중단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이처럼 부품업체의 비리와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이 올여름 전력위기의 근본 원인인데도 ‘전기를 절약해달라’고 담화문을 발표하면 마치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고통만 분담시키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을 경계한 측면이 있엉 보인다.
 그러나 예고된 총리 담화를 이례적으로 심야에 돌연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정 총리 본인의 의중보다는 청와대의 ‘입김’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청와대 측은 지난 정부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원전 부품 비리가 훨씬 심각한 것으로 보고 철저한 조사로 안전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담화문 발표를 보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원전 문제에 대해 한 치의 의혹도 숨김없이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원전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자 일단 담화를 보류한 것”이라며 “청와대와 총리실이 담화 보류에 대해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미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곧 정부 자체조사와 감사원 감사가 잇따를 전망이어서 비리 원인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 뒤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전날 부품 위조와 관련된 업체들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 수사에 착수했고, 정 총리도 관련 기관장들에게 국내외 전문가들을 동원해 자체조사와 감사를 벌이라고 지시한 바 있다.
 철저한 원인 규명을 강조한 이상 정부와 검찰의 조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 이번 여름 절전을 호소하는 내용의 담화문 발표는 사실상 취소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차피 여름철에는 전력량에 여유가 없다는 점에서 예정대로 절전 호소 담화문을 내고 나중에 조사결과가 나올 때 대국민 사과를 해도 되는데 정부가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느라 혼선을 빚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영광 원전 5·6호기가 고장으로 중단된 상황에서 김황식 전 총리는 국민들에게 전기 절약을 호소하는 내용의 담화문을 그대로 발표한 바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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