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낙엽 바다였다. 하늘도 낙엽이요, 땅도 낙엽이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스며드는 것도, 숨 쉬게 하는 것도 죄다 낙엽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천지간이 바로 낙엽 세상이다. 아! 낙엽도 장엄일 수 있구나. 바스러지고 말면 그 뿐인 낙엽도 정녕 장엄일 수 있다니.

 함양 상림(上林). 상림에는 가을 끝이 닿은 지금 온통 낙엽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하늘 향해 키 맞추고 선 나무들이 흩뿌려대는 낙엽들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드넓은 숲 속에 장엄 이룬 화엄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우리 나라 20여 군데의 숲 가운데 유일한 낙엽활엽수림인 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 상림이 있는 함양군은 경남 서북부 도계(道界)에 위치하고 있다. 영·호남 교통의 분기점으로 신라와 백제의 물산 교역지였으며, 신라시대에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운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학문과 문벌이 번성하여 "좌 안동, 우 함양"으로 일컬어진 고장이다. 특히 선비의 시조로 꼽히는 최치원을 비롯해 김종직, 정여창, 박지원 등 대학자들이 목민관으로 족적을 남겼다.

 상림은 함양 사람들의 정신적인 터전인 곳이다. 그래서 함양을 고향으로 가진 사람들은 비록 타지에서 살고 있더라도 옛 친구보다도 상림을 더 그리워한다고 말한다. 상림은 바로 함양의 상징인 셈이다.

 

 산그늘 내려와 마당귀 다 젖을 때

 군불 때는 푸른 연기 슬퍼라

 적막한 하늘 한 채 그대로 걸려 있는

 풀잎의 처마 끝에 사슴의 무리

 더 어두워지기 전에 소금 한 주먹 퍼담고

 금강모치 버들개 열목어 둘러앉는 맑은 밥상머리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보면서 따라 왔지만

 억새도 칡넝쿨도 아래로 가는 길 파묻었으니

 달도 없는 그믐밤을 누가 오겠는가

 물소리 일찍 베고 누워 먼 바다에 가 닿으면

 온 밤을 흩어지는 고래 울음 소리

 앞산도 중중하고 뒷산도 첩첩하니 일어나면 시름이여

 산봉우리 마다 구름이 내려와서 다 베어 먹고

 실없이 부려놓고 가는 잡동사니들

 개 짖는 마을의 발가락도 환히 보이는

 바람 지나는 빈 들에 우렁이 껍질

 함양에서 태어나 상림의 신록, 녹음, 단풍, 설경을 줄곧 온 몸으로 보며, 느끼며, 배우며, 익혔기에 시인이 될 수 있었다는 김석규 시인은 〈청산별곡〉이란 시를 내놓았다.

 백성을 지극히 사랑한 목민관이요, 대문장가인 최치원과 김종직, 정여창 등의 올곧은 선비정신의 맥이 흐르고 있는 함양 땅에서 자란 그이기에 시를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비리와 모순을 불식하고 전횡과 독선을 배격하고 권위주의와 독재를 타파하고 퇴폐와 향락을 일소하고 근절하여 진리와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고 양심과 도덕성을 회복하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성을 복원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는 이슬을 굴리는 풀잎의 힘으로 끝내 살아 있고 궁핍한 상황 속에서도 시인은 견인불발의 의지로 꺾이지 않아야 한다"고 시와 시인에 대한 고결한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

 상림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1100여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태수로 함양(당시 이름은 천령)에 온 최치원 선생이 조성하였다. 선생은 함양 중심부를 지나는 위천(渭川)이 넘쳐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하여 둑을 쌓고 물줄기를 외곽으로 돌린 뒤, 둑을 따라 나무를 심었다. 원래 이름은 대관림(大館林)이었다.

 위천 둑을 따라 펼쳐진 상림은 길이가 2㎞에 너비 80~200m, 전체 면적은 21ha에 달한다. 우리 나라 어느 곳에서나 즐겨 볼 수 있는 낙엽수의 대명사인 굴참나무와 졸참나무, 느티나무를 비롯해 보기가 흔치 않은 사람주나무와 개서어나무, 왕개서어나무, 팥배나무, 좁은 단풍, 쪽동백, 가막살나무, 때죽나무, 팥배나무 등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서 있다. 그 사이에는 키 낮은 단풍들이 몸을 온통 새빨갛게 불태우고 있다.

 숲 가운데에는 작은 물길(水路)도 나 있다. 청아한 가락을 울리며 맑은 물이 쉼없이 흘러내리고, 물길 군데군데에는 자연석 바위로 징검다리도 만들어놓았다. 그런가 하면 비록 콘크리트로 만들었지만, 제법 운치를 살린 아치형 다리도 내걸려 있다. 두 군데에 연못도 만들어져 있다. 못 속 연 잎 위에도 낙엽이 지천으로 내려앉아 아예 낙엽 밭이 되었다.

 상림이 함양 사람들의 정신적인 터전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 곳에 함양의 역사와 정신을 읽을 수 있는 유적과 기념물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숲 중앙부 입구에는 상림을 조성한 최치원 선생을 추모하는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와 "함양 이은리 석불"이 서 있다. 또 남쪽 끝에 만들어져 있는 3천여 평의 운동장 주위에는 함양을 상징하는 누각 함화루(咸化樓)와 초선정(焦仙亭)도 들어서 있다.

 숲의 전면 여러 곳에는 함양 사람들의 의로움을 상징하는 기미년 함양 만세기념비와 의사 하승현, 김한익 기념비 등도 세워져 있다. 한말 의병장 권석도 선생의 동상도 건립되어 있고, 조선 때 함양을 거쳐 간 군수, 현감의 선정비 30여 기도 모셔져 있다.

 올해 여름 김석규 시인은 옛 시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시집 〈태평가〉를 펴냈다. 시집 〈태평가〉에서 시인은 〈가시리〉와 〈태평가〉, 〈신 안민가〉, 〈신 처용가〉, 〈신 목민심서〉 등의 시를 통해 혼탁한 이 시대에 대해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정신 기저에 성장 터전인 고향 함양의 올곧은 정신사의 맥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수첩〉--------------------------------------------------------

1941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김석규 시인은 196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현대문학〉에 청마 유치환 선생 추천을 받아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풀잎〉 〈백성의 흰옷〉 〈남강 하류에서〉 〈저녁 혹은 패주자의 퇴로〉 〈먼 그대에게〉 〈쾌청〉 〈먼 나라〉 〈고장난 희망〉 〈태평가〉 등이 있다. 부산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경남도 문화상, 현대문학상, 봉생문화상, 부산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현재 울산시 교육청 학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여행수첩〉--------------------------------------------------------

△찾아가는 길=88올림픽 함양 나들목에서 내려 함양군청 방향으로 간다. 군청에서 200m 정도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위천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기 전 우회전을 해서 1001번 지방도로 백전 방향으로 가면 위천 변 오른 쪽으로 상림숲이 펼쳐져 있다. 입장료는 없고 작은 주차장 있는데 주차료도 없다.

 함양에 가서 정여창 고택을 함께 보면 좋다. 상림에서 24번 국도 거창 방면으로 방향을 잡고 5분 정도 가면 된다. 위천을 끼고 왼쪽으로 개평리 마을이 나오는데 정병호 가옥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가면 찾기 쉽다.

△맛있는 집=함양군청 가까운 곳에 소고기국밥을 하는 대성식당(055·963·2089)이 있다. 연탄불에 푹 고아서 끓이는 국밥과 갈비탕 5천원, 소고기 수육은 2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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