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출범 초기나 주요 선거를 앞두고 정치논리에 밀려 경제원칙이 등한시되는 현상이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정치권의 압박은 시장의 정상적인 가격결정 시스템과 자원배분 기능마저 왜곡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융수수료 인상 논의…“내리라고 할 때는 언제고”
 18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전날 “지방선거가 곧 다가오는데 지역 공약이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지역 주민들이 우리와 한 약속이 어떻게 되느냐고 따질 것”이라며 지역 공약의 이행 의지를 강조했다.
 지역 공약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이미 ‘경제성 없음’ 판정을 받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상당수인데도 해당 지자체와 지역구 유권자의 바람을 우선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경제적 타당성과 효율성을 도외시하는 사례는 최근 들어 규제산업인 금융권에서 잇따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등의 각종 수수료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난해에 견줘 반토막 난 수익을 일부 보전하는 차원이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금융지주사 고위 관계자는 “정치논리가 낳은 폐해가 부메랑으로 돌아오자 당국이 다급해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은행, 카드사, 증권사 등의 수수료는 2010~2011년 금융권이 호황을 누리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자 정치권은 ‘수수료 청문회’를 열어 금융권을 압박, 결국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를 즈음해 금융권 자율결의 형식으로 수수료를 내렸다.
 이 관계자는 “당시 연구용역, 원가분석, 공청회를 거쳤지만 사실상 요식행위였다. 정치권의 압력을 받은 당국이 답을 정해놓은 뒤였다”며 “상황이 달라지니 이제 와서 수수료 현실화가 거론된다”고 꼬집었다.
 대출 최고금리도 이런 맥락에서 줄곧 인하됐다. 금융위원회는 전날 연 39%의 대출금리 상한선을 2018년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대선을 앞둔 2007년 66%에서 49%로 낮아진 최고금리는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0년에 44%로, 이듬해 39%로 5%포인트씩 인하됐다. 2010년 10·27 재보선을 앞두고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이를 25~30%로 낮추겠다고 공언했으며, 19대 국회 들어서도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20~30%로 더 낮추는 법안이 연거푸 발의됐다.
 이재선 대부금융협회 사무국장은 “최고금리를 낮추면 서민이 혜택을 본다는 단순한 정치논리에서 비롯했지만, 실제로는 불법 고금리 사채가 늘었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계열사들 매각 과정에도 특정지역의 정치적 압력이 거세지고 있어 경제원리에 의해 추진될지가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있다.
 현재 약 9만7천명이 수혜 대상으로 분류된 ‘국민행복기금’과 채권단의 반대에도 수조원을 투입한 STX그룹,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졸업 이후 또 부실해져 워크아웃에 다시 들어간 쌍용건설 등 대기업에 대한 ‘대마불사’식 구조조정도 비근한 예로 거론된다

 ◇“입법권 견제 필요” vs “경제원칙 무시 않는다”
 전문가들은 정치논리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경제원리를 제쳐놓고 정치논리에 묻혀 내리는 결정은 시간이 지나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낳고,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빚을 우려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를 의식한 인기영합주의에만 목을 매고, 이게 선거에서 통하니 계속 반복된다”며 “정책의 실패는 결국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고, 정치인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저축은행 사태’다. 저축은행의 부실이 커져 속으로 곪아가는 상황을 알았음에도 정권 수뇌부 차원에서 정치적인 부담을 의식해 선제적인 구조조정 건의를 묵살했다는 주장이 ‘저축은행 청문회’에서 제기된 바 있다.
 더는 억누를 수 없는 상황이 돼 부실 저축은행이 줄줄이 퇴출당하자 총선을 앞두고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예금보험기금으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대중영합주의적 법안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정치논리 폐단의 악순환인 것이다.
 김 교수는 “4~5년 뒤만 내다보는 정치논리로는 장기적인 국가발전 계획을 짜는 데 한계가 있다”며 “여당이 당정 협의를 주도하거나 파급 효과가 큰 입법 활동을 할 때는 영향평가와 예산분석 등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이 앞뒤 재지 않은 채 무턱대고 정치논리만 고집하는 식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경제원칙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며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하는 것이지, 정치권이 무조건 힘의 논리로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재계에서 경제원칙 위배 사례로 거론하는 신규순환출자 금지나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경우 ‘건전한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며, 이를 이해당사자인 재계에 ‘경제원칙대로 하라’고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도 “법안 내용이 ’A에서 Z까지 있다‘고 하면 그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부분에 집중해 (이해당사자들이) 선전전을 편다”며 “법안 심사는 실제로 그렇게 극단적으로는 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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