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수수료의 모범규준 제정과 원가 분석을 추진하는 것은 주먹구구식이라고 비판을 받아온 수수료 책정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수수료를 올려 은행의 수익 기반을 좀 더 공고히 하자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의 수익 부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천차만별 은행 수수료…‘고무줄’ 논란 재점화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10만원을 다른 은행으로 송금하면 수수료가 면제(한국씨티은행)되는 경우부터 1천500원(경남·산업은행)을 내야 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은행 마감 후 현금자동입출금기(CD·ATM)를 이용하더라도 적게는 500원(국민·기업은행)부터 많게는 1천300원(전북은행)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은행 창구를 찾아 다른 나라로 외화를 송금하는 경우도 수수료가 천차만별인데다 송금할 때 들어가는 전신료도 5천원, 7천500원, 8천원, 1만원 등 제각각이다.
 물론 은행 수수료 역시 서비스에 메기는 ‘가격’에 해당하므로 모든 은행이 같을 수는 없다.
 문제는 수수료를 책정하는 체계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은행 나름대로 수수료를 계산하는 기준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각종 서비스에 대한 원가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금융당국이 검토한 적도 없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어떤 항목을 참고해 수수료를 산정하는지, 수수료가 어떤 원가 분석을 통해 책정되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는 “은행권 공동 또는 은행별로 수수료 산정 기준을 제시하는 모범규준을 만들고 원가도 분석해 합리적인 수수료 체계를 구축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수수료 모범 규준에는 수수료 원가산정 방식과 산정 항목, 절차 등이 세부적으로 명시될 것으로 보인다.
 수수료 부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외부 회계법인이나 소비자단체의 평가를 거치도록 할 방침이다.

 ◇‘현실화’는 수수료 인상?…“금융당국 잣대도 고무줄”
 다만 최근 최수현 금감원장이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수수료 ‘현실화’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수수료 인상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 원장은 이달 15일 금감원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가 분석을 통해 (금융회사의 입장에서) 적정한 수수료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수료 인상 시 따르게 될 국민적 반발에 대해 ”가장 노심초사하는 부분으로, 현실적인 여건이 어려울 수 있다“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고 있으며 당장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수료 인상 가능성이 불거지자 금감원은 당장 수수료를 인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원가분석과 산정기준 확립을 통해 부당하게 높은 수수료는 내리고, 너무 낮은 수수료는 현실화하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 원장이 저성장·저금리 기조로 반 토막이 난 은행권의 수익기반 확충 방안의 하나로 수수료 현실화를 언급한 점을 고려하면 ’현실화‘는 곧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힘을 받는다.
 이에 대해 금융권과 소비자단체는 수수료 뿐 아니라 수수료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잣대 또한 ’고무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총대를 메고 카드사와 은행권의 수수료 낮추기에 나섰던 2011∼2012년과 비교하면 불과 1년 만에 금융당국의 입장이 정 반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서는 은행의 가산금리와 수수료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제품을 개발하거나 가격을 끌어내리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이 ’원가분석‘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순익 감소로 아우성을 치는 상황에서 원가분석은 수수료 인상의 근거를 만들어주는 도구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한 때에는 수수료에 대해 ‘갑의 횡포’라고 비판하더니 하루 아침에 입장이 바뀌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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