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된 영화 〈무사〉는 내몽골의 평원에서 촬영을 했다. 내몽골 자치구 영토의 50%이상이 초원지대이며 그리고 사막과 구릉, 황토지역이다. 이번 여행에서 끝없는 초원과 구릉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영화 속의 모래먼지와 사막 그리고 토성들을 떠올렸다.

 내몽골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민족자치구이다. 외몽골인 몽골공화국은 소련의 위성국가에서 벗어나 독립을 했다. 내몽골과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그들은 통일의 의지가 없는 것 같았다.

 내몽골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7C 중엽 청나라 때이다. 청 정부는 고비사막지대를 경계선으로 사막 북부지역을 외몽골이라 하였고 남부지역을 내몽골이라 불렀다. 내몽골은 일찍이 한족의 이주가 시작되어 지금은 한족이 90%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몽골족이다, 민족적으로 따져 본다면 굳이 통일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치구 성도인 후하허호트는 인구가 1백 10만 명을 넘는 큰 상업도시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내몽골의 경제 중심지역이다. 또한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곳곳에 공업도시도 있다. 후하허호트는 여행객이 많이 드나들어 대초원 투어를 비롯한 경마구경, 몽골 문화 체험 등 다양한 상품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간 북동부지역은 한적한 곳으로 이제 관광산업에 눈을 돌려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란호트시에도 중국 관광회사에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직원이 파견되어 있었다.

 우리가 다싱안링 산맥의 남쪽으로 가는 길을 잡은 것은 장춘에서 출발지로 삼기에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몽골족이 뿌리이고 그들을 상징하는 에루구네기(旗)가 있지만 변변한 민족 박물관이 없는 것도 한족이 대부분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유목 민족의 전통이 소멸되고 독립된 외몽골 과는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도 없는 것 같았다. 몽골 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했으나 중일전쟁 종결과 함께 1947년 5월 1일 자치구라는 비극을 나았다.

 초원이 많은 이곳은 유목으로 이루어지던 목축업으로 양, 소, 말, 낙타, 돼지를 사육했으나 지금은 정착경영으로 바뀌었다. 여행을 하면서 초원에서 방목하는 멋진 말을 보았고 양떼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중국의 여행사는 초원과 사막을 이용한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중이다. 덕분에 우리가 찾는 곳마다 첫 번째 손님이 되어 환대를 받았다.

 8월초였지만 고원지대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였다. 몽골은 봄, 가을이 아주 짧다. 가을이 시작된다 싶으면 금새 겨울이다. 건조하고 낮은 온도로 겨울의 살을 에는 추위에 견디기 위해 가을은 월동준비의 기간이라 몹시 분주하다. 일교차도 크지만 연교차가 36℃가 넘는 곳이다.

 아침저녁의 쌀쌀한 기온 때문 미처 겨울옷을 준비하지 못한 우리는 얇은 옷을 입고 떨어야했다. 여름피서를 제대로 한 셈이다.

 "몽골의 여름은 거북이 걸음으로 오지만 겨울은 황소걸음으로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추위부터 몰려온다. 그래서 몽골의 겨울필수품은 온도계라고 한다. 온도계의 눈금을 보고 그 날의 준비와 바깥출입의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이번에 새롭게 안 것이지만 몽골에서는 보온병이 무척 발달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물은 하루가 지나도 온도 변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곳에서 보온병 하나를 사 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내몽골에서는 민족문화를 기대할 수가 없다. 중국에 동화되어 음식이나 풍습이 중국과 거의 비슷하다. 외몽골이 구 소련의 지배를 받아 러시아 식이라면 내몽골은 중국식이다. 유목 생활을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풍습이 보존 될 리가 없다.

 내몽골 자치구는 자원이 풍부하여 중국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벌판의 곳곳에 곡식 보관 창고가 줄지어 있었다. 곡식이 남아 그렇게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넓은 벌판에 옥수수와 밀, 조가 끝없이 들어서 있으니 식량이 남을 수밖에 없다.

 초원을 달리다 만나는 백양나무 숲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방풍림의 구실도하고 가로수가 되기도 하는 백양나무가 구릉괴도 잘 어울렸다.

 해발고도 1000m내외의 고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지는 내몽골은 지금 한창 개발 중이었다. 곧 세계 각 국의 사람들이 초원과 사막을 보기 위해 밀려 올 것이다.

 우리가 머문 알산은 연평균 기온이 1℃이다. 겨울이 오면 거의 움직임이 멈춘다. 영하 45℃까지 내려간다고 했다. 우리가 떠나올 때, 알산의 시골에선 겨울준비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글:배혜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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