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무슨 슬픔의 덩어리냐

 빈 가슴팍에

 푸른 수인의 번호를 달고

 오늘도 고통의 비늘을 번쩍이며

 몸부림치며

 어디론가

 급히 가는.

(그대 집은 늘 푸른 바다로 넉넉하다, 빛남, 1991)

 

 바다는 김성춘 시의 뿌리이다. 그에게 바다는 삶이고 음악이고, 좋은 그림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고운 선율이 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삶의 고통이기도 삶의 희열, 종교적 열반(涅槃)이기도 하다. 그는 줄곧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그의 시의 깊이를 바다에서 퍼 올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 나타난 바다는 형형색색의 빛깔을 담고 있다. 이 시는 삶의 격정을 바다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 격정이란 "슬픔의 덩어리"로, "고통의 비늘"로 번뜩이며, 몸부림 치는 바다. 그 바다에 시인은 생(生)의 끝 자락을 붙잡고 있다. 그 생의 끝자락은 "몸부림치며 / 어디론가 / 급히 가는" 바다와 같은 지도 모른다. 시인은 바다의 풍경을 통해 "빈 가슴팍에 / 푸른 수인의 번호를 달고 / 오늘도 고통의 비늘을 번쩍"이는 바다 앞에 서 있다. 아마도 삶이란 "몸부림치며 / 어디론가 / 급히 가는" 바다와 같이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오늘 바다에 가 보라. 그 바다 끝자락에서 시인은 녹차(綠茶)를 바다와 함께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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