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시간의 주머니 속에서 1년을 얻어 쓰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 데 한 해도 다 쓰고 얼마 남지 않았다. 살아갈 수록 시간만큼 헤픈 것이 없다. 하루 24시간도 잠시면 다 써버리고 한 해도 돌아보면 잠시 잠깐이다. 움켜잡아도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고 마는 시간. 11월이 12월로 걸어가고 있다. 오래지 않아 또 한 해의 끝이 오리라.

 산다는 것에 등이 굽고 마음 쓸쓸할 때 태안반도를 찾아가라. "커다란 평안"이라는 태안(泰安)반도 아래 "편안한 잠"을 자고 있는 안면(安眠)도 꽃지 해수욕장의 낙조와 마주하라. 황도(黃道)의 길을 따라 동쪽 바다에서 떠올라서 서쪽 바다로 지는 해가 만들어 주는 장엄한 낙조 앞에서 오랫동안 사유하라.

 꽃지의 낙조는 마침표이다. 사람의 하루를 마감시키는 화엄 같은 마침표이다. 그 마침표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은 무한한 것으로 알고 시간 보다 먼저 흘러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자는 시간 속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에 시간을 놓아두고 산다. 시간이 찍어주는 마침표를 바라보며 다음 시간의 경건함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시간을 사유할 줄 아는 사람만이 안면도에서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는 것이다.

 태안반도는 충남 태안군과 서산시, 예산군, 당진군을 품고 있다. 태안반도의 바다는 서해라고 이름하기보다 보다는 황해라고 부르는 것이 친숙하다. 누런 바다 황해. 해가 잠기는 바다는 황인종인 우리의 살색과 가장 닮은 빛의 바다다. 그래서 쉽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의 바다인 것이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깊어지지 않고 사람을 발길을 허용하는 낮은 바다는 오랫동안 사람과 함께 한 몸처럼 살아온 바다다.

 그 바다에 살을 대고 있는 태안반도의 해안선은 리아스식이다. 톱니바퀴 같은 리아스식 해안선은 이 곳에 만(灣)과 반도를 별처럼 뿌려 놓고 있다. 또 그 사이 30개나 되는 해수욕장이 숨어 있고, 섬은 왜 그렇게 많은지 우리나라 섬 중에서 여섯번째 크기를 가진 안면도(安眠島)를 비롯해서 사람들이 사는 11개의 섬과 사람들이 살지 않는 무인도 107개가 자리잡고 있어 태안해안국립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안면도는 그런 태안반도 아래 편안하게 잠든 섬이다. 안면도는 처음부터 섬이 아니었다. 조선의 인조 때에 서울로 곡식을 실어 나르기 위해 지금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의 신온리 사이를 절단해 운하를 만들면서 이때부터 안면곶은 섬이 되었다. 그리고 절단된 물길 위로 다시 연육교가 놓이고 안면도는 다시 뭍과 이어졌다.

 안면도의 나무는 소나무이다. 수령 50∼80년된 소나무들은 거대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또 안면읍 승언리에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 모감주나무(천연기념물)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안면도에는 제철이면 푸짐하게 잡히는 꽃게와 대하(큰 새우), 까나리 액젓과 송화소금이 바다의 맛을 그대로 전해주고, 비옥한 땅에서 자란 고추와 육쪽마늘, 생강이 땅의 맛을 만들어 준다.

 안면도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꽃지해수욕장의 낙조이다. 꽃지해수욕장 앞 바다에 할아비 바위와 할미 바위가 나란히 서 있는데, 동쪽에서 찾아온 해는 정확하게 그 사이로 떨어진다.

 저녁해는 아주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를 모두 붉게 적신 뒤 수평선에 닿는 순간 큰 불덩이를 만들었다가 이내 지고 만다. 어리석은 사람은 낙조 앞에 탄식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바다 속으로 들어간 해가 내일 다시 동쪽에서부터 우리를 찾아올 것을 알고 있다. 그대, 저 낙조와 마주했을 때 하루를 얼마나 아름답게 살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시간은 늘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여행수첩]

태안반도와 안면도가 있는 충남 태안군은 울산에서 찾아가기 가장 먼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용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8시간 이상 걸린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평택 나들목(IC)을 빠져나가 다시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 서산 나들목이나 해미 나들목을 빠져 서산을 거쳐 태안으로 가면 편안하다.

 길이가 531km나 되는 리아스식 해안인 태안반도에는 30개의 해수욕장이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다. 만리포, 천리포, 몽산포처럼 알려진 곳도 있고 파도리, 샛별, 바람아래, 꽃지 같은 예쁜 이름을 가진 해수욕장도 숨어 있다.

 태안반도에 속해 있는 안면도는 태안에서 연육교로 이어진다. 꽃지 해수욕장의 낙조가 아름답고 2002년 4월26∼5월19일 안면도 국제꽃박람회가 열리는 자연휴양림의 송림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송림 입구에 안면도 출신 채광석 시인의 아름다운 시비(사진)가 서있다.

 요즘 안면도 일대에는 대하(큰 새우)와 꽃게가 제철이다. 대하는 안면도 백사장 해수욕장이 집산지인데 자연산 1kg에 5만원에 판매된다. 꽃게는 1kg에 2만7천원.

 태안 안흥항에서 황해의 섬인 신진도, 가의도, 란도, 궁시도, 난도, 병풍도, 석도, 우배도, 격렬비열도 등을 돌아오는 유람선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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