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천지로 가는 길이었다. 끝없는 초원을 달리며 비로소 내몽골의 땅 50%가 사막과 초원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모두가 후회 없는 여행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천지산은 외몽골 즉 몽골공화국과 국경지역으로 알산에서 2시간 이상을 차로 달려가서 만난 산이었다. 알산에서 작은 마을을 몇 개 지나고 검문이 있었다. 국경이 가까운 곳이라 통과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검문소를 통과하자 끝없는 초원이 펼쳐졌다.

 감동이 아니라 격렬한 떨림이 내부에서 일어나 가슴이 아렸다. 아니 눈물이 났다. 일상의 번뇌를 잊게 해 주는 동시에 완전한 무욕을 경험한 곳이었다.

 고원지대의 가을은 빠르다. 광활한 평원은 온통 꽃물결이었다. 바람이 약간만 불어도 스르르 풀잎들이 눕고 꽃들은 춤을 추었다. 마치 배색이 잘 된 비단을 펼쳐놓은 듯했다. 꽃으로 만든 융단이었다.

 노란 꽃은 분명한 노란빛을 띄고 흰색은 순백으로 선명하고 보라색은 하도 맑고 고와서 푸른 하늘과 잘 어울렸다.

 우리 나라 가을 산에서 볼 수 있는 들국화 종류인 참취류가 지천이고 코스모스가 줄지어 있다. 노란 국화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대부분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꽃들이었다. 들꽃이라면 어지간한 종류는 거의 알고 있지만 그런 상식은 별 소용이 없었다. 고원지대의 평원에 피는 꽃은 그저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다. 그들이 발하는 향기와 색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쁨이었다.

 알산 시장에 팔고 있던 말린 꽃들이 모두 이런 평원에서 태양을 흠뻑 들이 마시고 피어났기에 그처럼 은근한 향기를 풍길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 가을 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산오이풀은 사람의 키를 넘어 피어 있다. 고산지대에서 피는 산오이풀이라 홍자색이 선명하고 줄기도 튼실했다. 산오이풀을 아름으로 꺾어 화관을 만들어 돌려가며 써 보았다.

 연보라색으로 온통 벌판을 수놓은 꽃은 마굽연이라 한다. 몽골에 맞는 이름이다. 꽃 모양이 말의 발굽모양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꽃은 사람의 감정을 밑바닥에서부터 울리는 힘이 있었다.

 가도 가도 벌판뿐이었다. 조랑말을 끌고 지나는 사람을 두 명 본 것 외에 인적이 없었다. 차를 세우고 벌판 한가운데 내렸다. 멀리서 준수하게 생긴 백마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 그대로 멈추어 선다. 갑자기 나타난 한 무리의 이방인을 한참 보더니 태연하게 풀을 뜯는다. 일행은 사진을 찍고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아이처럼 좋아한다. 그 꽃을 두고 차에 오르기가 아쉬워 시간을 잊고 벌판을 헤매기도 했다.

 이런 광경을 가까운 지기들에게 보여 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사진작가 친구와 동행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사람, 가족과 오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들꽃을 연구하는 선생님에게 많은 꽃을 보여 줄 수 없음을 섭섭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모두들 맘속에 품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느라 그 아쉬움이 얼굴에 역력하게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오리라" 그런 결심을 품고 초원을 달렸다. 가끔 백양나무가 보이기도 했고 밀밭이 나타나 멀리서 황금 물결을 일으키며 꽃과 조화를 이루기도 했다.

 천지산은 구릉처럼 보이는 산이었다. 고원지대에 있기 때문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높이가 1340m이다.

 천지산의 천지는 조그만 호수였다. 특이한 것은 물이 들어오는 입구도 없고 빠지는 출구도 없지만 물의 양이 항상 일정하다고 한다. 호수 옆으로 에델바이스가 있었다. 에델바이스는 고산지대에 피는 꽃이라 하늘과 가장 가까운 꽃이다. 천지산의 에델바이스는 산과 잘 어울렸다. 우리 나라의 솜다리 꽃과 같았다.

 천지에는 연못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나무를 짜 맞추어 만든 것으로 모양이 예뻤다. 호수 가운데로 나무다리를 놓아 만든 전망대에서 보는 천지는 아늑했다.

 산중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산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산을 거의 내려왔을 때는 빗줄기가 한층 거세어졌다. 산을 오를 때 입구에서 말린 꽃을 팔던 남매가 아직도 꽃을 품속에 넣은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 갈 때 죽 앉아서 꽃을 팔던 다른 사람들은 가고 없는데 얼굴이 말간 남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꽃을 몽땅 사주었다. 남매는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빗줄기를 뚫고 뛰어내려갔다. 변덕쟁이 비는 금방 그쳤다가 도 부슬거리기도 했지만 이내 맑아졌다.

 천지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애인호수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었다. 새로 지은 음식점이었는데 음식은 깔끔하고 담백했다. 천지산 아래에도 관광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새로 지은 집들이 있었다.

 식당의 기념품 코너에서 꽃을 말려서 만든 엽서와 책꽂이 몇 개를 샀다. 식당 주변에도 여러 종류의 꽃은 다투어 피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붉은 구절초 종류와 구름국화같은 꽃을 보았다.

 알산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잠시 쉬었다. 조그만 사진관에 결혼기념 사진이 있었는데 신부가 한 다발의 꽃을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글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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