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독일의 라이프치히에 있는 ‘카페바움’은 카페이자 커피 박물관입니다. 3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요. 바흐나 슈만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사교장이자 창작공간이었습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연인이었던 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함께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의 담배연기 속에서 글을 썼습니다. 생텍쥐베리, 헤밍웨이, 피카소도 이곳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조앤 K. 롤링은 에든버러의 여러 카페를 전전하면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썼습니다. 유럽에서 수많은 예술가가 탄생한 것은 일찍이 발달한 카페문화 때문입니다. 카페는 예술인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제공했고 사교와 담론의 공간이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커피 전문점이 빼곡합니다. 늦은 오후 시간, 크레마가 풍부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카페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탐색합니다. 비즈니스로 혹은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러 온 사람들입니다. 갈 곳 없는 청년 백수들도 보이네요.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엄마들도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육아 정보를 나눕니다. 저 쪽에선 노트북으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네요.

사랑방을 잃은 이 시대의 남자들도 눈에 띕니다. 안주인의 눈치 같은 건 볼 필요 없이 시대를 논하던 남자들만의 공간인 사랑방을 잃어 버렸으니 갈 곳이 마땅찮아 찾아왔군요. 빨래터나 우물도 사라졌으니 여자들도 마땅히 수다 떨 장소가 없습니다. 그녀들도 한 쪽을 차지했군요. 시어머니와 남편의 흉을 보는지 까르르 웃다가 한 사람의 이야기에 경청도 합니다. 과외도 하고 있습니다. 긴 머리의 여자가 곱슬머리 흑인여성에게 책을 펴 놓고 열심히 한글을 가르칩니다.

카페는 일터이고 놀이터이고 혼자만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가장 편안하게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장소입니다.

때문에 불황속에서도 작은 동네의 골목까지 온갖 브랜드의 커피 전문점이 진출을 했나봅니다. 소형 울트라북을 끼고 카페로 출근하는 코피스족(커피 + 오피스)이 늘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우리 동네 카페에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 같은 멋진 곡이 나올지, 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에 버금가는 명작이 나올지 말입니다.

어둠이 내리자 커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카페의 불빛 아래로 모여 듭니다. 나 또한 이웃으로 저녁 마실을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카페 문을 밀고 들어갑니다.

배혜숙 수필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