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항, 신라의 대외교역 통로 역할 해내 ”
한삼건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가 9일 CK아트홀에서 열린 경상일보 비즈니스컬처스쿨에서 ‘울산의 도시 변천사’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울산은 신라의 국가항구이자 태생부터 산업도시였습니다.”

9일 오후 7시 울산시 남구 달동 CK아트홀에서 열린 경상일보 제3기 비즈니스컬처스쿨 12번째 강사로 나선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는 ‘울산의 도시변천사’를 주제로 강연했다.

한 교수는 “고대 울산의 지형을 보면 울산만과 현재 굴화리에 있었던 굴화만 등의 만(滿)이 잘 발달해 있었고 장생포, 염포 등의 포구, 거기에다 달천철장까지 산업도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지형을 갖고 있었다”며 “특히 암각화 등에서 발견되는 배 그림과 일본 야요이 토기 등을 보더라도 울산은 예부터 상공업 및 산업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이 태생적으로 산업도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달천채광 유적과 입암리 유적, 피막마을 야철지, 황성동 제철유적 등 울산·경주지역 제철유적 분포도를 들었다.

그는 또 울산이 신라의 국가항구였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신라(경주)에는 바다가 없어 직접적인 대외 교역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는 울산항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며 “신라시대 울산항을 통한 수출입품으로 괘릉의 무인상과 로만글라스, 인면유리구슬, 정창원보물 등이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울산의 지명 유래에 대해 “삼한 및 삼국시대 우시산국에서부터 고려 현종 때 울주(1018년)에 이어 조선 태종 때 울산(1413년)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며 “이에 따라 올해가 정명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함께 중구지역의 축성사와 울산의 군사학적 위치의 중요성, 일제강점기 일본의 임해공업도시가 된 배경, 1962년 공업지구 지정과 시 승격 과정도 함께 설명했다.

한삼건 교수는 울산 출신으로, 일본 교토대학 건축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울산시 경관위원회 위원장과 울산교총 부회장, 고래문화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차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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