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끼고 올라가면 포항과 영덕에 이른다. 포항시 흥해읍 칠포리에는 암각화(경북도 유형문화재 249호)를 구경하고 바닷가를 따라 영덕군으로 접어들면 오래된 기와가 쭉 늘어서 있는 괴시리전통마을을 만나게 된다.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를 익히 보아온 울산사람들에 칠포리 암각화는 너무도 왜소하고 괴시리전통마을도 화회마을이나 양동마을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가을바다를 따라 여행하는 기분을 생각하면 한번쯤 볼만하다.

 칠포리 암각화는 곤륜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표지판이 없으면 암각화를 찾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산 속에 널부러져 있는 3개의 바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가 좁고 상하가 벌어지는 실패모양의 도안이 그려져 있다.

 칠포리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도로가에 표지판이 서 있고 산으로 길이 나있다. 산등성이를 오르는 오솔길이다. 가을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억새가 눈부시다. 그 길 가에 자리잡은 작은 바위에 암각화가 있다. 표지판이 서 있다. 그림이 몇개 안되기 때문에 실망을 할 수도 있다.

 그 길로 계속 올라가 영덕군 영해면에서 동북쪽으로 가면 괴시리 전통마을을 만나게 된다.

 300년전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전통마을. 영덕 천전댁(경북도지정문화재자료378), 물소와고택(경북도지정문화재자료198), 대남댁(경북도지정문화재자료 197), 해촌고택(경북도지정문화재자료199), 영양남씨괴시파종택(경북도지정문화재자료75) 등 영양 남씨들이 모여살던 마을로 현재 200여년 이상된 기와가 30여동 남아 있다.

 고려후기 문신인 목은 이색 선생이 출생한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에 목은의 유허비가 세워져 있으나 생가는 전해지지 않는다. 목은 선생의 외가가 이곳이다.

 망월봉이 뻗어내려 팔자형국을 이룬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잡고 앞으로는 동해안 3대평야 중 하나인 영해평야가 광활하게 전개되어 있다. 집들은 대개 안채와 사랑채의 처마가 이어져 □형태를 띠고 있다. 조선후기 우리나라 주택의 한 특징을 나타내는 구조다.

 우리나라에 여럿 있는 전통마을과는 다른 느낌이다. 화회마을 처럼 지나치게 깔끔하게 단장되어 마치 일부러 조성해 놓은 듯한 마을도 아니다. 양동마을 처럼 99간 으리으리한 대가댁도 아니다. 조금은 지저분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사람 냄새가 물씬하다. 저녁이면 밥짓는 연기와 된장찌개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는 옛 시골마을 그대로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고목처럼 그렇게 세월을 이기고 살아온 할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도시에서 살다가 어느날 이게 아니다 싶어 시골로 찾아든 젊은 부부가 이웃하며 살고 있다. 간혹 비어 있는 집은 곧 허물어지기라도 할 듯 구차하다.

 신돌석장군도 영덕의 자랑거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다. 영덕군은 1906년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대항했던 신돌석 장군을 기리기 위해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 신돌석 장군 성역화 사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지난 99년부터 성역화 사업이 전개되어 전시장과 사당을 갖추었고 현재 주변 정리에 한창이다.

 지난 95년에는 신돌석 장군의 생가를 도곡리에 복원해 두었다. 평민이었던 그의 생가는 작은 초가다. 성역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과 가깝다.

 1878년 태어난 신돌석 장군은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해와 평해 등에서 왜병과 싸워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의병장이다. 31세의 나이에 왜적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친척에 의해 주살 당했다.

 영덕은 바닷가 마을이다. 대게원조마을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이 곳에서 잡힌 게의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흡사하다 하여 대게라고 불린다. 대게를 파는 집은 바닷가에 즐비하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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