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석 울산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걷기 좋은 계절이다. 아니 무엇을 해도 좋은 계절, 가을이다. 태화강변 산책로에도 걷기에 열심인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산책로에는 강을 바라보면서 쉴 수 있는 데크가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난간에 붙어있는 안내판의 문구가 낯설다. ‘단차주의.’ 쉽지 않다. 한자로 ‘段差注意’를 발음대로 적다 보니 그리된 것인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의미를 알아차리고 바닥을 내려다보니 높이 차이가 나는 바닥면 경계에 친절하게도 형광색 페인트 칠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시공할 때에 굳이 단차를 낸 것인지 궁금하다. 공연히 공사비만 늘어났을텐데. 여기에서 생각나는 것,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디자인이란 본래 사용자(User)중심이어야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모든 사용자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디자인(Design for All)을 유니버설 디자인이라 한다. 보통 사람들의 평균을 기준으로 디자인하다 보니 평균에 못 미치거나 넘는 경우에는 별 이유 없이 차별받기 십상인 것이다.  

▲ 손베임방지가드

의류업계가 55사이즈를 표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옷을 사지 못해 상심하는 여성들을 생각해보라. 빅 사이즈 의류만을 취급하는 ‘큰 옷 가게’는 그래서 생겨난 것이리라. 장애, 연령, 성별, 체격 등의 차이에 관계없이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 공간, 건축물 등의 디자인 모두에 적용된다. 타고 내리기 편리한 저상버스, 높이 조절이 용이한 싱크대, 점자가 새겨진 맥주 캔, 악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가위, 손 베임을 방지하는 핑거가드 등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디자인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로 시작된 유니버설 디자인, 이제는 제품의 시장 확대에도 기여하게 되어 산업체에는 또 다른 기회가 되고 있다. 에코디자인(Eco Design)과 함께 21세기 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유니버설 디자인인 것이다. 진정한 디자이너는 모두 다 휴머니스트이어야 함도 이러한 연유에서 일 것이다. 사실 사람에 대한 친절과 배려야 말로 문명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덕목이며, 우리네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며 기쁨이며 보람일 것이다.

박노석 울산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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