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은어다! 은어가 왔다.”

앞서가던 동생이 강물을 내려다봅니다. 우린 일제히 물속으로 빨려들 듯 몸을 내밉니다. 수십 마리의 은어들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선바위 아래 여기는 태화강 중류입니다. 봄에는 황어도 떼 지어 다녔습니다. 곧 저 멀리 북태평양에서 캄차카 반도를 거쳐 수만리를 헤엄쳐 온 연어들이 태화강으로 오겠지요. 작년 가을 배가 불룩한 연어를 이 돌다리에서 만났습니다. 연어들은 알을 낳고 장엄하게 죽었으며 치어들은 봄을 맞아 또 바다로의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망성교에서 대곡박물관까지 태화강 백리길 2구간을 걷기로 한 날입니다. 연어들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나아갑니다. 강을 돌아 황금 들판을 따라가니 이백년이 훨씬 넘은 서씨 고택이 나옵니다. 단번에 한 시대를 넘어섭니다. 사연댐을 끼고 들어간 깊은 골짜기에는 도토리가 구르고 다람쥐들이 여기저기서 놀라 달아납니다. 사람의 발자국이 거의 닿지 않은 곳입니다.

드디어 한실마을입니다. 집집마다 키 큰 감나무가 서 있는 산골 동네입니다. 울밑에 서너 포기의 봉숭아와 백일홍이 피었습니다. 샐비어가 유난히 붉습니다. 장독대 옆에는 수탉의 볏 같은 맨드라미가 있고 그 뒤로 달리아가 목을 숙인 채 햇볕에 졸고 있네요. 지난해 물방울 작가 김창렬전을 보았습니다. 작품의 명제가 모두 ‘회귀’였습니다. 세계적인 노 화가의 오랜 타국 생활이 짐작이 갔습니다. 우리 모두는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자 하는 기억장치를 가지고 있나 봅니다. 모천으로부터 더 멀리 떠나 있을수록 한실마을 같은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꾸게 됩니다.

한실마을에서 고개를 넘으면 반구대 암각화가 있습니다. 시간을 훌쩍 거슬러 선사시대입니다. 배를 타고 작살로 고래를 잡는 선사인의 모습은 언제 봐도 생명력이 넘칩니다. 그 넘치는 기운을 받아 쥐라기 공원으로 향합니다. 공룡발자국화석이 있는 대곡천 주변을 우린 그렇게 부릅니다. 일억 년 전, 공룡의 놀이터였을 바위에서 마지막 숨고르기를 합니다.

태화강 백리 길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여행의 도착점은 대곡박물관입니다. 박물관 마당에서 어린이들이 굴렁쇠를 굴립니다. 반짝이는 치어들입니다. 저 눈 맑은 아이들은 이제 먼 바다로 나가 한 세상을 살겠지요. 안도현은 ‘연어, 라는 말속에는 강물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들에게서도 엷은 강물냄새가 납니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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