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미자 춘해보건대 교수·요가과

무엇이든 자세히 알려고 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음을 느낀다. 호흡도 마찬가지다. 문득 왜 ‘호흡’이라고 할까? ‘흡호’라고 하면 왜 안 되지 하는 생각까지 미친다. 호흡은 사전적 의미로 ‘숨을 내쉬거나 들이쉼’을 뜻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호흡과 목숨이 다했을 때 하는 호흡을 제외하고는 평생 동안 호흡은 들숨과 날숨이라는 쌍을 이루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호흡이 내뱉는 날숨이며, 마지막으로 하는 호흡은 들이쉬는 들숨이다. 이런 맥락에서 ‘호흡’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죽음이라는 것은 숨을 들이쉰 다음 내뱉지 못함이라고 볼 수 있다. 내뱉는 것은 비움을 뜻한다. 우리의 삶은 날숨을 통한 비움부터 비롯되었다. 엄마의 안전한 뱃속에서 난생 처음으로 맞이하는 세상에 살기위해 본능적으로 비움을 먼저 배우지만 결국은 비우지 못해 맞이하는 것이 죽음인 것이다. 비움과 채움이 호흡에서만 비유되기 보다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이나 자신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 고집도 해당되리라.

나아가 ‘나’라고 하는 자아에도 비유될 수 있다. 많은 것을 채우기를 원한다면 그만큼 비워야 한다. ‘나’라는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비움이 더 필요한 것이다. 요가의 호흡법에서도 들숨보다 날숨을 강조하고 있다. 들숨보다 두 배 정도 더 길게 숨을 내쉬도록 권하고 있다. 이를테면 숨을 들이마실 때 걸리는 시간이 만약 5초라고 한다면, 내쉬는 숨은 10초가 되도록 한다. 이렇게 날숨을 강조하는 이유는 들숨을 더 잘하기 위해서다.

날숨은 이완을 가져온다. 심리적으로 긴장이 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 숨을 길게 내쉴 경우 쉽게 이완이 된다. 흔히 가슴이 답답할 때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것도 날숨을 길게 함으로써 정화하기 위해서다. 또한 느리고 깊은 날숨은 통증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흔히 고통스러울 때 흐느끼는 것은 날숨을 더 강화하기 위한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고통스러워도 울지 못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억압하거나 또는 너무 긴장되어 숨을 잘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어 중, 각자의 생각을 내려놓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할 때 ‘호흡을 같이한다’, ‘호흡을 맞춘다’라고 표현한다. 나의 것을 비울 때 조화를 이루듯이 호흡이라는 뜻에서도 말해주고 있다. 시간을 갖고 숨을 내쉬어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숨은 채워질 것이다. 비우는 것이 힘들 경우 먼저 길게 숨을 내쉬면 어떨까싶다.

곽미자 춘해보건대 교수·요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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