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세상이 하 수상하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영웅을 기다립니다. 올 여름 창작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가 대학로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옆집 아저씨 같은 이순신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성웅 이순신’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투옥되자 소리까지 내며 울었습니다. 그러다 명량해전에서의 통쾌한 승리에 감격하여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습니다. 백전백승을 영웅화한 그 때도, 무한 경쟁 시대를 사는 오늘날에도 이순신은 관심의 대상입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인간 이순신’이란 표제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이순신 리더십아카데미가 큰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내년에 개봉될 영화에 벌써 화제가 집중됩니다. 하루하루 전쟁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순신을 통해 영웅을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뮤지컬 ‘이순신’을 보았습니다. 연출을 맡은 이윤택은 신격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조선 아비들의 자기희생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짐승도 아니고 영웅도 아닌 진실로 인간이어라’ 이순신은 무대 위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이며 한 여자의 남편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그가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까요.

‘난중일기’에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눕기를 자주하고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이나 성인들도 이순신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영웅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강건한 정신을 바탕으로 눈물겨운 노력이 만들어 내는 고독의 산물입니다. 최근에는 그동안 늘 빠져 있던 이순신의 또 다른 면인 ‘인간’을 찾아주기 위해 여기저기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뮤지컬 ‘이순신’에서도 서서히 전쟁에 미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악몽을 꾸는 장면은 호방한 장수가 아닌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에게 붙은 화려한 수식어를 뺀다고 업적이 폄하 되는 일은 없습니다. 7년 동안 쓴 난중일기의 백미는 역시 간결하고 명료한 기록입니다. 기록문화가 부재한 우리 역사에 그 자체만으로 이순신은 마땅히 영웅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온다는 영웅을 목을 쭉 빼고 기다려 봅니다. 어쩌면 진정한 영웅은 우리 안에 깃들어 있지 않을까요.

배혜숙 수필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