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독일의 세균학자에 의해 발견된 탄저병(anthrax)은 피부가 까맣게 썩기 때문에 석탄을 뜻하는 그리스어 anthrakis에서 이름이 붙었다.

 탄저병은 Bacillus anthracis라는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인수공통 질환. 소, 말, 양과 같은 초식 동물에게 주로 발생한다. 사람은 우연한 숙주이며, 탄저균에 감염된 동물의 가죽이나 털 또는 뼈를 다루는 과정에서 동물 배설물에서 나온 탄저균 포자를 호흡하거나 감염된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걸린다. 즉 감염경로로는 피부, 호흡, 음식(위장관) 등 세 가지. 감염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의 직접 전파는 없다.

 탄저균은 독성이 매우 강하고 흙 속에 흔히 존재하지만, 흙 속 탄저균은 세포벽이라는 껍질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껍질이 벗겨져 가축이나 인체에 감염되면 치명적인 독성 균으로 변한다. 때문에 탄저균의 껍질을 인위적으로 벗기면 생화학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피부탄저병은 대개 흙 속에 있던 균에 감염된 가축을 만졌을 때 피부에 이미 있던 상처로 균이 침투해 발생한다. 감염되면 벌레에 물린 듯 붓고 가렵다가 통증 없는 종기로 발전한다. 크기는 직경 2~3㎝ 정도에 중심부가 검고, 주변 임파선도 붓는다. 치사율은 20%이며, 감염 부위에 깨끗한 거즈를 붙이고 시프로플록사신, 페니실린, 독시사이클린 같은 항생제를 투여하면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위장관 탄저병은 탄저균에 감염된 육류를 먹으면 걸리며 구토와 발열, 복통, 심한 설사, 토혈 등으로 시작해 심하면 패혈증과 쇼크로 치사율이 25∼60%에 이르지만 발병률은 낮다. 우리 나라에서 94년 경주, 95년 서울, 2000년 창녕 등에서 탄저병에 걸려 죽은 소를 폐기처분하지 않고 그 고기나 생골을 먹었던 사람에서 6예의 사망이 보고되어 있다.

 이번 미국에서 발병한 호흡기탄저병은 탄저병의 임상 질환 중 가장 무서운 질환이다. 처음에는 고열과 기침 등 감기 증세를 보이다 이후 호흡 곤란과 오한, 부종으로 진행된 뒤 심할 경우 혼수상태와 정신착란증을 일으킨다. 목과 가슴으로 침투한 탄저균은 몸 속의 조직 세포를 파괴하는 단백 분해 독소를 만들어 발병 1∼2일 만에 사망한다. 잠복기는 5∼60일이지만 일단 발병하면 급속도로 진행돼 치사율이 70∼80%에 이른다. 다행이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페니실린 등의 항생제를 투여하면 치료될 수 있지만 일단 증상이 나타난 후에는 대부분 사망한다.

 예방책에는 가스 마스크, 백신, 항생제가 있지만 모두 나름대로 문제점이 있다. 우선 가스 마스크로는 완벽한 예방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의학적으로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예방책은 백신 접종이며 예방효과는 92.5%에 달한다. 그러나 완전한 효과를 기대하려면 여러 달에 걸쳐 여러 번 맞아야 하며 매년 재접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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