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친구가 개명을 했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손주가 자라면 할머니 이름이 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섭섭이라고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그럼요, 그럴 수는 없지요. 아들을 간절히 염원했는데 딸이 태어나 섭섭이로 불리다 호적에는 그냥 ‘섭이’가 되었다고 처음 자기를 소개할 때 우린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그녀의 언니는 할아버지 회갑연을 며칠 앞두고 세상에 나왔기에 ‘갑이’ 입니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틀림없는 아들이라고 온 동네가 굳게 믿었는데 또 딸이라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동생은 ‘분이’가 되었답니다.

그녀의 남동생이 태어나자 문중 어른들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모여들더니 사흘 낮밤을 사랑채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아직 몸조리도 못한 어머니의 밥상, 술상을 받으며 말입니다. 길섶의 풀과 하늘의 별에도 이름이 있는데 딸이라는 이유로 이름 하나 가질 권리도 없다는 것에 그녀는 분노 했습니다. 누군가 불러 주어 꽃이 되는 이름입니다. 불러서 축복이 되지 못하는 그만이, 계분, 말남, 순악, 막딸 이런 이름이 예전에는 흔했습니다. 태어난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요. 섭이로는 줄기하나 잡히지 않아 열심히 살 이유가 없었다기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친구는 이제 이름값을 하고 싶다며 소리 높여 웃습니다. 아들을 낳기 위한 도구로써가 아니라 삶의 주인이 되는 이름을 가졌으니까요. 실(實)로 끝나는 그녀의 새 이름을 자꾸 불러봅니다. 육십년 만에 자신을 찾아가는 그 길이 환한 꽃길이기를 바랍니다. 좀 늦었지만 자존감이란 열매를 달고 알차게 여물겠지요.

나는 이름이 많습니다. 수나라는 아명은 아직도 불리고 있습니다. 오빠와 언니가 사고로 죽자 동네 사람들은 병약한 나를 붓들이라 했습니다. 놓치지 말고 붙들어야 한다나요. 학교 다닐 때 별명은 책길이었습니다. 도서관 주변을 맴도는 나를 친구들은 그렇게 불렀습니다. 시집을 오니 할아버님과 아버님은 진주애기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다 나이 들어 진주댁이 되었지요. 이 많은 이름 앞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갑, 섭, 분만치도 내 삶에 천착하지 못했으니 혜(惠)자가 내게 묻는 것 같습니다. 은혜롭게 제대로 이름값은 했는가 하고.

섭섭하다 못해 분분하게 어지러운 여자들의 이름도 한 세대를 넘겼나봅니다. 딸을 오매불망 바라는 부모가 부지기수입니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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