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강변길을 차를 타고 달립니다. 며칠 사이에 풍경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어둠이 슬쩍 내려앉는 시간에 본 가로수들은 풍성하던 잎이 떨어지고 맨 몸이 되었습니다. 지리산에도 첫눈이 내렸습니다. 가을도 다 가기 전에 말입니다. 겨울이 온다는 건 나이 들어감을 실감나게 해 주기에 첫눈이 와도 설레지 않습니다. 라디오에서는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가 나옵니다. 애잔하면서도 흥겨움이 넘치는 드라마틱한 곡입니다. 탱고 선율은 해가 점점 짧아져 겨울로 넘어가는 이 계절에 들어야 제 맛입니다. 반도네온 연주가 귀에 착착 감겨듭니다. 반도네온은 아코디언을 기초로 하여 만든 작은 손풍금이지요. 그러니까 아코디언과 같은 족속입니다. 애조를 띤 음색과 짧은 스타카토가 특징입니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반도네온 소리를 들으니 황혼 무렵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사람들과 섞이지 못해 늘 주변을 서성였고 음주가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게 사셨지요.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데도 몹시 서툴렀습니다. 가욋길로 빠져 본 적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인간의 갈망을 한껏 나타낸 ‘리베르 탱고’를 듣고 있으면 도대체 아버지는 어떤 열망을 품고 있었을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탱고는 발보다 귀를 위한 것이다’라고 했던 피아졸라의 말처럼 ‘리베르 탱고’는 긴장과 이완, 슬픔과 기쁨, 자유를 위한 휘몰이, 그리고 파워풀한 힘까지 고루 들어 사람의 감정을 쥐락펴락 합니다. 자신을 가두고 살았던 아버지도 이 곡을 들었다면 그 치명적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해, 연말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옷차림에 무척 신경을 쓰는 아버지가 중절모까지 쓰고 외출을 하셨지요. 모처럼 늦게 귀가를 하시고는 상기된 얼굴로 애수를 자아내는 아코디언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고 의외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악기라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했습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노래 한 곡을 제대로 불러 본 적이 없었기에 진심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갖기에 그리 늦은 나이도 아닌데 그 갈망의 원천을 우리는 무시해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아코디언을 연주할 수 있었다면 어깨위에 평생 눌러 붙어있던 외로움의 한 자락을 떨쳐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도네온의 강력한 스타카토 주법이 온 몸을 파고듭니다. 내 인생도 겨울로 넘어 가고 있나 봅니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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