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석 울산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울산 장생포에는 고래가 있다. 아니, 고래가 들어간 많은 간판이 있고, 각종 고래형태 그대로 매달아 놓은 가로등이 있다. 영덕, 울진에는 대게가 있다. 대게가 들어간 간판이 많이 있고, 대게형태를 그대로 매달아 놓은 가로등이 있다. 한 마디로 게판이다. 경주 보문관광단지에는 퓨전스타일의 가로등이 있다. 전체는 아르누보(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을 풍미한 양식)적인데 이를 지탱하고 있는 하단부는 첨성대의 형태인 기묘한 가로등이 있다.

어느 지역이나 특산물이나 상징물은 있기 마련이고 이를 활용하여 디자인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특산물 그 자체 구체적 형상을 반드시 넣어야 하는 것일까?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전체적인 조형미를 고려하지 않고 이것저것을 섞어 자장면도 아니고 짬뽕도 아닌 것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우선 최종 디자인물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대개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공공디자인에서는 좀 더 심각하다.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상징물을 모티브로 하는 디자인은 공공디자인 분야가 대부분이고,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물론 디자인 심의위원회 등을 가동하여 전문가의 자문을 얻기도 하지만 최종디자인의 결정권은 자치단체장인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선출직인 자치단체장들의 개인적인 취향에 빠지거나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조급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디자인계에서 회자되는 우스갯소리 하나! 클라이언트(Client 디자인 의뢰자·디자인 경비를 대는 개인이나 단체)의 변함없는 요구사항 세 가지, ‘빨리­싸게­좋게.’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빨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고 체계적인 접근이 어렵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KTX 울산역 광장에 설치된 고래조형물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울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고래를 모티브로 하여, 고래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다. 거대하며 역동적인 고래의 이미지는 산업수도 울산의 이미지와 부합되는 것이다.

박노석 울산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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