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들녘은 유난히 노랗고 보기좋다. 풍년이고 가을비가 적당해서 오곡 백과가 모두 풍성하고 색깔이 아름답다. 자연이 주는 고마움과 신비함 그리고 풍성함으로 마음이 푸근해 진다. 풍년은 좋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농업이 갖는 경제 외적 기능이 크다고 하는 것이다.

 쌀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식량 이상의 것이다. 그런데 그 쌀이 많아서 탈이라는 것이다. 재고가 있는 데다 풍년이 겹쳐 골칫거리이니 쌀 소비를 촉진시켜야 한다고 호들갑이다. 농민들은 농민들대로 쌀값 정책에 항의해서 벼가 누렇게 익어있는 논을 갈아엎어 가면서 수매량을 늘려달라고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마치 풍년이 유죄인 것같이 보이는데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하늘에 부끄럽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도대체 이 나라에 식량정책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있다면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개탄스럽다. UR 이후 충분히 예견된 일이 또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십수년이 지났어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 국회는 무엇을 하는가. 멱살잡이 화면으로 "남의 나라 Y셔츠 선전"에 바쁜가. 도대체 얼마나 쌓여서 이 난리들인가? 예기 왕제편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나라에 9년의 축적(蓄積)이 없는 것을 일러서 부족(不足)이라고 하고 6년의 저축이 없는 것을 일러서 급(急)하다고 하고 3년의 축적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나라가 아니라(國無 九年之蓄 曰 不足, 無 六年之蓄 曰 急, 無 三年之蓄 曰 國非其國也, 三年耕 必有一年之食. 九年耕 必有三年之食)" 한다. 단지 나라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비록 백성이라 하더라도 또한 그렇다.

 3년 경작하면 반드시 1년 양식의 저축이 있어야 하고 9년 경작하면 반드시 3년 양식의 저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굶주리게 된다. 물론 예기를 기록할 때 하고는 여러가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식량의 중요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중요성은 더해가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현 시점에서 볼 때 지난 50년 간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면에서 풍요한 시대였다면 앞으로 50년은 많은 것이 부족한 시대가 될 것이고 2050년 이후의 식량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세계적으로 많은 인구가 굶어죽게 되는 기아의 시대가 도래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World Watch 연구소는 세계의 장기 식량 수급 전망에서 2030년이 되면 세계인구는 89억 명에 곡물 생산량은 22억t 수준으로 전망하는데 이 생산량으로는 현재 멕시코 수준의 연간 곡물 소비량 400kg을 가정 할 때 55억명 밖에 부양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곡물 수확 면적은 오히려 줄어들어서 70년대 1인당 17.9a에서 95년 11.7a로 줄고 있고 우리나라는 더욱 심해서 70년 7.3a에서 95년 4.5a 2000년에는 4.0a(논 2,48, 밭1.62)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식량 자급도가 30%가 안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루 세끼 중에서 2끼 이상을 수입해다 먹는 나라에서 주곡인 쌀이 재고가 좀 쌓인다고 쌀이 남아돌아서 골치라니 이게 무슨 망발인가. 그렇다면 왜 진작 수입해다 먹는 밀이나 콩으로 전환해서 식량 자급도를 높이지 못하는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밥은 나누어 먹어야 밥인 것이고 이것은 밥의 근본 철학일진데 북녘의 동포들 특히 어린이들이 굶어서 죽어 가는데 쌀이 남아서 골치라니 말이 되는가. 남쪽이 재해를 입었을 때 쌀과 옷감을 보내오지 않았는가. 밀이나 콩 등으로의 작목 전환이나 북한지원 등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필요하고 국회가 있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또 이런 일들은 정쟁 이전의 일들이 아닌가.

 제발 세끼 밥에 두끼를 수입해 먹고 있고 북녘에는 동포들이 굶주려서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데 쌀이 남아서 골치이고 풍년이 부담스럽다느니 하는 망발은 없기 바란다. 풍년이 부담되다니 죄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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