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책 읽어 주는 여자 책비(冊婢)를 아세요. 개인이 책을 소장하기가 어려웠던 조선시대에 필사본 서너 권을 보자기에 싸 들고 집집마다 찾아가 안방마님들에게 책을 읽어 주던 전문적인 직업여성입니다. 책비는 서른여섯 가지의 목청을 달리해 가며 사람들을 울리고 또 웃기기도 했답니다. 규방에 갇혀 있던 아녀자들에게 다른 세상으로의 꿈을 꾸게 했던 것이지요. 수건을 푹 적시거나 치마가 찌들도록 훔쳐낸 눈물 값도 분명 받았을 것입니다.

프랑스 영화 ‘책 읽어 주는 여자’에서 주인공인 마리는 선천적으로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발랄한 여인이었습니다. 일탈에의 욕구가 자라고 있는 의뢰인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어 줍니다. 영화에서는 고객의 집으로 책을 읽어 주러 가는 한갓진 길이 자주 나옵니다. 그녀의 경쾌한 걸음걸이가 책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어 주는 일은 사람들의 내면을 엿보는 여행이었습니다.

내게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며칠 전, 그림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기로 했답니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의 눈은 반짝거렸습니다. 귀를 활짝 열고 무릎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입을 오므리기도 하고 눈썹을 치켜 올리기도 하며 반응을 보였습니다. 코가 실룩 실룩 움직이더니 박장대소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온 몸으로 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침없는 상상력이 머릿속을 언제나 휘젓고 있으니까요. 나는 단지 재주 많은 거미 흉내와 씩씩한 친구의 목소리밖에 낸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용기가 생겨 다시 책보자기를 쌉니다. 젊은 어머니들에게 책을 읽어 주기로 했습니다. 타인과 소통의 매개체로는 책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책에다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눈물샘을 자극 할 곳과 살짝 위트가 들어 갈 부분을 말입니다. 책비처럼 서른여섯가지의 다른 목소리는 낼 수 없겠지만 감정을 버무려 넣되 물 흐르듯 차분하게 읽어 보려고 합니다. 울리고 웃기지는 못해도 멍석 깐 자리만큼 희망을 펼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 발꿈치를 살짝 들고 가뿐하게 골목길을 걷습니다. 책비가 된 기분입니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같은 전자음에서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관계맺음이 없습니다. 목소리를 통해야만 감성의 결이 살아나고 따뜻한 유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루하루가 팍팍하게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책을 읽어 주는 직업이 있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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