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놓칠 뻔 했습니다. 작은 가판대를 스쳐지나 몇 발자국을 가다 친구와 나는 거의 동시에 돌아섰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다!” 신기한 것을 본 듯 소리쳤습니다. 손으로 그리고 만든 카드는 온통 흰색이었습니다. 나무와 교회당, 하늘로 나는 썰매와 사슴이 그렇고 산타클로스까지 모두 새하얀 색으로 그려져 있었지요. 의아해하는 우릴 보고 카드를 파는 청년은 색채가 필요하다면 덧입혀서 만들어 보라더군요. 사는 사람에게도 정성을 담을 기회를 준다는 뜻이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도 12월이면 가게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레코드가게에서는 캐럴송이 종일 흘러나왔지요. 서점이나 문구점에는 수천종류의 카드가 전시되고 거리엔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쌓이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아저씨에게 방송에서 공식적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크리스마스카드가 서로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짧은 안부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편리함이 우선인 만큼 감동이 없습니다. 화면 속에서 보는 다채로운 카드는 삭막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팻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언제 들어도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캐럴을 들으며 크리스마스 카드에 소소한 얘깃거리를 풀어놓습니다. 애틀랜타에 사는 친구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고 있을 보령 댁에게, 아프리카의 한 소년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밖을 내다보니 흰 눈이 포슬포슬 성글게 내리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 눈길을 걸어 우체국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단편영화 ‘나무아미타불 크리스마스’가 생각납니다. 친구 마리의 초대로 크리스마스 날 교회로 간 동자승의 어색한 모습이 유쾌하게 그려집니다. 동자승은 목사님으로부터 조그만 트리를 선물 받고 늦저녁이 되어서야 총총걸음으로 돌아오는데 절집 앞에 커다란 트리가 서 있습니다. 큰스님의 선물이지요. 트리에는 예쁜 종과 동자승 인형도 매달려 있습니다. 종교의 참 된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영화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큰 뜻이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크리스마스트리를 밝히는 전등이 부처님오신 날의 연등과 다를 바 없지요.

은백색 카드의 아래쪽 모퉁이에 ‘나무아미타불 크리스마스’라고 붉은 글씨를 적어 넣습니다. 색을 입혀보라던 가판대 청년과 내가 같이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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