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금붕어를 닮은

▲ 일러스트: 윤문영

항아리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
성대를 다친 소녀들,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금붕어들
잠을 잔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배회하는 16분 음표의 음색은
표현할수록 거친 것이어서 누구라도 성대를 다치게 된다
냉정해지자, 탁할수록 냉정해지는 게 필요하다
모두들 잠을 자는 시간, 바람의 음역대는 위험하다
저녁에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이 고음역대 바람의 성대를 찢고
항아리의 주둥이 부위부터 깨고 있다
물 위를 부유하는 기름의 무지갯빛 닮은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스멀스멀 헤엄치는 항아리 속
성대를 다친 소녀들 입을 벌린 항아리처럼 앉아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시간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어 한다
소녀들이 잃어버린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의 암보(暗譜)다
소녀들의 등에 지느러미가 생길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항아리 속에서 소녀들이 다친 성대를 회복하고 다시 항아리 밖
거친 바람의 음표를 따를 수 있을 때 까지
누군가 깨져 허물어지는 항아리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거기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

[신춘문에 시부문 당선소감-이원복] 

 

재미삼아 했던 단어놀이, 문 하나를 얻다

문득, 이 ‘문득’이라는 단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 하릴없이 이 ‘문득’이라는 단어를 둘로 쪼개 재미삼아 문(門)과 득(得)이라 뜻을 부여하며 나만의 단어놀이로 얼어붙은 머리를 예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겨울 아침 아직 시린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곧 손바닥이 따뜻해졌다. 들고 있던 휴대전화기의 배터리가 따뜻해졌기 때문이겠지만, 괜찮다.

나는 당선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심장에서 뻗어 나온 뜨거운 피가 온몸을 돌아 이 손바닥까지 당도하여 내 손바닥이 금방 따뜻해졌다고 믿으면 그만이니까! 그게 삶이니까! 귓속에서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날 아침 재미삼아 했던 단어놀이. 정말 문(門) 하나를 얻었다.(得) 막상 덩그러니 문 앞에 서있으니 낯설고 긴장된다. 그러나 낯설고 긴장된 이 마음으로 다시 시를 쓰기로 다짐해본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문득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문 앞으로 이끌어주신 심사위원 정진규 선생님, 그리고 경상일보사에 감사를 전한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사랑하는 아내 혜원씨, 그리고 소중한 딸 로운이, 아들 루신이,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다.

-이원복-
-1974년 울산출생
-2008년 울산산업문화축제 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심사평-정진규] 

 

시적 공간속 질서화하는 이미지의 끈 탄력있게 조정

30명의 예심 통과 작품 114편을 즐겁게 읽었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작품들로 수련의 흔적이 역연했다.

신춘작품을 읽다 보면 대체로 두 개의 폐해에 직면하기 마련인데 이번 경상일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는 그러한 점들이 깨끗하게 극복되고 있는 징후들을 만날 수 있어 매우 다행스러웠다. 그 두 개의 흐름이란 신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교실 지도의 냄새가 나는 작위적 유형의 흐름과 요즈음 젊은 시인들의 편향된 흐름인 관능적 환상의 자폐적인 몸짓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들이 극복되어가고 있는 자율적인 모색의 투명한 시편들이 상당수 눈에 뜨이고 있음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의식과 표현의 균형과 질서에 대한 점이다. 사유적인 면과 지적 성찰이 너무 앞서 작위와 경직에 머무르거나 헤픈 정서의 노출로 불필요한 반복과 난삽을 일삼고 있음이 그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가 표제가 좀 작위적인 인상이 있었으나, 앞의 작품들보다 투명하고 탄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금붕어와 항아리와 성대를 다친 소녀들을 하나의 시적 공간 속에 질서화하는 이미지의 ‘끈’을 탄력 있게 조정하고 있었다. 소녀들의 성대를 다치게 한 시간의 상처에 대한 사유와 인식, 그 치유를 향해가는 건강한 포즈도 잃지 않고 있어 믿을 만했다. ‘저녁을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들의 표현에서는 시인이 지녀야 될 비의적(秘儀的) 시력(視力)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선작으로 선정함에 모자람이 없었다. 축하한다.

-정진규
-193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平和> <몸詩> <알詩> <도둑이 다녀가셨다> <本色> <껍질> <공기는 내 사랑>, 육필시집 <淸洌集>, 한국대표명시선100 <밥을 멕이다>, 한국현대시인총서 <정진규 시 읽기 本色>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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