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에 앉아 색종이를 접고 있을 때였어요.

‘부스럭’소리와 함께 수풀 속에서 아기 너구리가 나왔어요.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을 쫓아왔나 봐요. 아기 너구리는 달아나는 낙엽을 잡으려다 발라당 넘어지기도 해요. 낙엽에 온통 정신이 팔려서 내가 보고 있는 줄도 몰랐어요.

언제 왔는지 엄마 너구리가 아기 너구리 곁으로 다가왔어요. 엄마 너구리는 아기 너구리의 털을 천천히 핥아주었어요. 아기 너구리는 엄마 너구리에게 몸을 비볐지요.

나는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어요. 살그머니 일어나는데 그만 무릎에 있던 색종이가 ‘팔랑’ 날아갔어요. 색종이를 잡으려다 엄마 너구리와 눈이 딱 마주쳤어요.

“안…녕? 난 은지야.” 

▲ 일러스트: 김천정

내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어요. 엄마 너구리는 서둘러 아기 너구리를 데리고 숲으로 사라졌어요.

“누가 왔나?” 할머니가 방 안에서 나왔어요.

“할머니, 너구리가 왔어. 그런데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갔어.”

나는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켰어요.

“너구리? 할매는 또 누가 온줄 알았다 아이가.”

할머니가 별일도 아니라는 듯 마당으로 내려갔어요. 할머니는 마당에 널어둔 빨간 고추를 하나하나 뒤집었어요. 나는 자꾸 숲 쪽으로 눈이 갔어요. 엄마 너구리와 함께 있던 아기 너구리가 참 부러웠거든요.

우리 엄마는 병원에 있어요. 열손가락을 다 접어도 셀 수 없을 만큼 병원에 오래 있었지요. 아빠는 회사가 끝나면 병원에 가서 엄마를 돌봐주어야 해요.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 집에 와 있어요.

외할머니 집은 시골이에요. 주위는 온통 나무와 풀밖에 없어요. 멀리 집들이 손톱 만하게 보이긴 해요. 거기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에요. 내 친구는 하나도 없어요. 여기에서는 시간이 달팽이처럼 느리게 가요.

햇빛이 눈 부셔서 저절로 눈이 떠졌어요. 방문을 열자 어제 접다만 색종이들이 툇마루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어요.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종이접기를 했어요.

엄마는 병원 침대에 앉아 색종이로 여러 가지를 접어주었어요. 색종이들은 종이학도 되고 목걸이, 시계도 되었어요. 그중에서 나는 색종이 사진기가 제일 맘에 들었어요. 입으로 ‘찰칵’ 소리를 내며 엄마 사진도 찍었어요. 그런데 사진을 너무 많이 찍었나 봐요. 그만 색종이 사진기가 찢어지고 말았어요.

하지만 엄마에게 다시 접어달라고 말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엄마는 앉아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거든요. 색종이를 접는 것도 힘들다고 했어요. 내가 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의 환자복은 점점 더 헐렁해져 있었어요.

아무리 해도 사진기가 잘 접어지지 않았어요. 나는 화가 나서 색종이를 집어던졌어요. 꼬깃꼬깃 구겨진 색종이를 빤히 노려보았지요.

“은지야, 성내지 말고 아빠 오면 접어 달라케라.”

툇마루에 걸레질을 하던 할머니가 내 눈치를 살폈어요.

“칫, 할머니는 왜 사진기도 못 접어?”

나는 입술을 쑥 내밀고 툇마루에서 내려왔어요. 마당 구석에 있는 풀숲을 발로 툭 찼지요. 방아깨비 한 마리가 풀쩍 뛰어오르더니 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찾으려면 풀숲을 한참 들여다보아야 해요. 방아깨비는 숨바꼭질 천재거든요.

“은지야, 이거 입어라.”

할머니가 분홍색 점퍼를 흔들었어요. 병원에 갈 때면 입는 점퍼예요.

“엄마한테 가는 거야?”

내가 큰 소리로 물었어요. 할머니는 나를 보며 잠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이다. 할매가 색종이도 못 접어주니까 은지 장난감이나 하나 사줄라고.”

할머니가 점퍼를 입혀주며 말했어요. 나는 기운이 좀 빠졌지요.

할머니를 따라 논둑길을 조심조심 걸었어요. 어느새 동네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가게가 보였어요.

좁은 가게 안에 장난감이라고는 자동차와 물총, 먼지 쌓인 노란 고무공이 전부였어요. 나는 노란 공을 집어 들었어요.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슬픈 얼굴로 나를 보았어요. 그러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놓는 거예요. 나는 조금 화가 났어요. 하지만 손에 사탕을 한줌 쥐어 주어서 화가 풀렸어요.

가게에서 조금만 더 가면 엄청 큰 은행나무가 있어요. 나무 아래 평상에는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앉아 있었지요.

외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사탕을 먹으며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어요. 할머니들이 소곤거리면 소곤거릴수록 내 귀에는 이상하게 더 잘 들렸어요.

“수진이를 쏙 빼닮았네. 에구, 불쌍한 것.”

수진이는 엄마 이름이에요. 외할머니는 이야기하는 중간 중간 눈물을 닦아냈어요.

집으로 올 때에는 큰 길로 돌아왔어요. 큰 길에 나오자 경운기가 털털 거리며 지나갔어요. 가끔씩 자동차도 쌩하고 지나갔지요.

“앗, 할머니 저기.”

나는 도로 옆 비탈길을 가리켰어요. 뭔가가 죽은 채 널브러져 있었어요.

“차에 치있는갑다. 쯧쯧.”

할머니가 혀를 찼어요. 나는 할머니 치마 뒤에 숨어서 그 옆을 천천히 지나갔어요. 안 보려고 눈을 꼭 감았는데도 자꾸 실눈이 떠졌어요.

굵은 꼬리털이 보였어요. 너구리였어요. 몸에는 진흙이 지저분하게 묻어 있었지요. 내 가슴이 쿵쿵쿵 빠르게 뛰었어요.

할머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리를 두드리며 방에 누웠어요.

나는 노란 공을 가지고 놀았어요. 혼자서 노니까 뭘 해도 신이 나지 않았어요. 건성으로 휙 던진 공이 하필이면 바로 옆 숲으로 떼구르르 굴러들어갔어요.

숲 안쪽은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했어요.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입을 반쯤 벌리고 낮게 코를 골고 있었어요. 나는 머뭇거리다 숲으로 한 발짝 들어갔어요. 공이 바로 앞 수풀 속으로 굴러가는 걸 분명히 보았거든요.

긴 나무 작대기를 주워 수풀을 살짝 헤집어보았어요. 공이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수풀을 툭툭 치면서 조금씩 발을 옮겼지요. 땅에서 서늘하고 축축한 흙냄새가 났어요.

건너편 수풀 아래로 노란 색이 보였어요. 나는 나무 작대기를 내던지고 달려가려다 우뚝 멈춰 섰어요. 수풀 옆으로 짧고 통통한 꼬리가 보였거든요. 아기 너구리 꼬리였어요. 가까이 다가가면 아기 너구리가 달아날 거예요.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어요.

“쏴아아.”

바람이 한바탕 소란을 피웠어요. 바람을 타고 낙엽들이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낙엽들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어요. 낙엽 하나가 아기 너구리 꼬리 옆으로 살며시 내려앉았어요. 꼬리가 살랑 움직였어요.

“혹시, 우리 엄마 못 봤니?”

수풀 속에서 아기 너구리가 물었어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엄마? 엄마가 어디 갔는데?”

“마을로 간다고 했어. 먹을 거 구하러.”

나는 그때서야 오는 길에 보았던 너구리가 떠올랐어요.

“왜? 봤어? 응?”

아기 너구리가 자꾸 물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너도 못 봤구나.”

아기 너구리가 기운 없는 소리로 중얼거렸어요.

“이리 나와. 나랑 같이 공놀이 하자.”

나는 다른 말을 했어요. 속으로는 아기 너구리가 슬프지 않게 매일 와서 놀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은지야!”

아빠 목소리가 들렸어요. 뒤돌아보니 아빠가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었어요. 깜짝 놀란 아기 너구리가 수풀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어요. 아기 너구리는 숲속으로 잽싸게 달아났어요.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아기 너구리에게 소리쳤어요.

“내일은 꼭 같이 놀자!”

나는 아빠 손을 잡고 숲을 빠져나왔어요.

아빠가 새 신발과 가방을 사왔어요. 내년에 내가 학교에 간다고 했어요. 나는 아빠가 올 때마다 엄마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괜히 눈치가 보였어요. 아빠는 엄마 얘기만 꺼내면 그림자처럼 어두워지거든요.

오늘은 아빠 기분이 좋아보였어요. 나는 얼른 물었지요.

“엄마는 언제 와?”

아빠가 멈칫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어요.

“이제 곧 선생님도 만나고 새 친구들도 생길거야. 은지는 좋겠다.” 아빠는 다른 말을 했어요.

“엄마도 입학식에 오는 거지? 응?”

나는 아빠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어요.

“할머니도 이제 은지랑 아빠랑 같이 살 거야.”

아빠는 나를 보지 않았어요. 자꾸 다른 말만 했어요.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빠가 꼭 안아주었지만 쉽게 눈물이 그치질 않았어요. 내가 아기 너구리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아빠도 그렇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아빠가 도와주어서 드디어 색종이 사진기를 접었어요. 나는 색종이 사진기를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엄마가 했던 말이 들려왔어요.

“색종이 사진기는 특별한 사진기야. 이걸로 찍은 사진은 눈으로 볼 순 없어. 하지만 영원히 마음속에 남는단다. 바로 여기.”

내 가슴에 손을 얹으며 미소 짓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어요. 따뜻한 우유를 마셨을 때처럼 가슴이 따스해졌어요. 문득 아기 너구리가 생각났어요.

내일은 색종이 사진기를 들고 숲으로 갈 거예요.

[당선소감-동화]이영아

 

서툴고 부족해도 동화쓰기 멈추지 않을 것

‘아직 아니다.’

한 편의 동화를 쓰고 나면 늘 내뱉는 말이었습니다.

쓰면 쓸수록 저 자신의 부족함이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당선소식은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서툴고 많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너무 큰 욕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됐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한편의 동화를 위해 앞으로도 저는 ‘아직 아닌’ 동화들을 계속 써 나갈 것입니다.

저를 동화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대단하신 김재원 선생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함께 공부하는 신세계 글벗들, 노둣돌 선배님들과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켜봐 준 가족과 부모님, 친구들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또한 힘내서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금의 감사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며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영아-
-1972년 부산 출생
-2012년 동서문학상 수상
-글나라 아동문학 연구소 회원
-현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터

[심사평-이규희] 

 

진정성 담은 스토리와 긍정적 암시 돋보여

신춘문예에 어울리는 신선하고 산뜻한 작품을 기대하며 본심에 올라온 9편의 단편동화를 읽었다. 하지만 주제와 소재를 아우르고 다듬는 절차탁마나 발효의 시간이 보이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작품이 많았다. 엉성한 구성과 하술한 문장 위주의 습작과 같은 작품들을 읽으며 응모자들이 동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도 들고.

그 중에서 당선작으로 뽑은 ‘색종이 사진기’는 가장 동화다운 구성과 안정된 문장을 보여주었다. 색종이로 만든 사진기를 통해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애틋한 마음과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죽은 엄마 너구리의 죽음을 모른 채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기 너구니의 만남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읽는 이에게 진성성이 느껴졌다. 엄마가 접어주던 색종이 사진기를 몇 번의 연습을 통해 결국에는 혼자 접을 수 있게 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장차 주인공이 엄마 없는 나날들을 꿋꿋하게 견딜 것이라는 긍정적 암시를 안겨준 점도 돋보였다.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우열을 겨룬 작품 또한 낡은 사진기를 주인공으로 한 ‘마지막 사진’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과 인물의 심리상태를 무리 없이 그려낸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지나친 설명식 문장과 밋밋한 구성으로 감동을 주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 외에도 판타지적 요소를 도입한 ‘억새 아이’ 등 몇 작품이 있었지만 지나치게 이야기가 억지스럽고 소재 또한 신선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수많은 응모자들에게는 좀 더 자기 안에서 주체를 삭히고 읽혀 더욱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이규희-
-1978년 <소년중앙> ‘연꽃등’ 당선
-이주홍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 수상
-‘아버지가 없는 나라로 가고 싶다’ ‘어린 임금의 눈물’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등 다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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