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갈 기회를 은근히 기다리곤 한다. 누렇게 익은 들녘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싫증나지 않아 좋다. 풍요로움으로 다북차게 하는 황금들판은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게 하여 두 손을 모으게 한다. "천지님 감사합니다. 동포님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기간에도 차를 타고 야외로 나갔다. 알곡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고개 숙이고 있는 벼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는데 한 무더기의 논이 눈에 들어왔다. 그 논에는 누런 벼가 있어야 할 자리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거의 피 반, 벼 반인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며 논의 주인을 탓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농부는 다 부지런한 줄 알았는데 게으른 농부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럴 바에야 무엇 하러 모를 심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어디에서는 심혈을 기울여 키운 벼를 갈아 엎어버렸다고도 하는데, 그 사정이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혹시 같은 이유에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농부의 마음은 자식을 키우는 어버이의 마음과 한가지가 아닐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마치 자식을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도 같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본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모습인가? 모내기철에 논에다 모만 심었지 피를 심은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때때로 피를 뽑아주고 거름하는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가을에 거두어드릴 것이 없는 것처럼 내 마음도 스스로 잘 살펴서 때때로 일어나는 악한 마음과 아닌 마음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 가는 마음공부의 노력이 없다면 저 논과 같이 황폐해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며 마음을 챙겨본다.

 논은 벼라고 해서 잘 키워주고 피라고 해서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논은 그저 뭇 생명을 키워주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선택은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본래 마음은 착한 마음도 악한 마음도 염두에 없는 맑고 밝고 깨끗한 마음이다. 그런데 이 마음이란 것이 참 묘해서 때때로 요란하고 어리석고 그른 마음들이 불쑥불쑥 나오려고 한다. 그때 그때마다 마음을 잘 보아서 다스릴 줄 아는 공부가 바로 내가 해야될 공부이고, 이 세상사람 모두가 해야될 공부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 공부는 지체가 높다고 해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며, 학식이 많다고 해서 그만두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또한 아는 것이 없다고 하여, 가진 것이 없다고 하여 무관심해서도 안 되는 공부이다. 대통령에서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기업체 경영자에서 노동자까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잘 보아서 다스려나가는 공부가 절실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처럼 신문·방송보기가 겁이 나는 때에는 더욱 이 공부를 해야하는데". 모두가 사건자체에만 관심이 있고 그 사건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것은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자기 마음하나 자상하게 살피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올 가을 튼실하게 익은 알곡만큼이나 우리의 마음도 실다운 공부로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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