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카드뮴 중독’ 업무상 재해 첫 판결

1990년 11월 15일.

울산지방노동사무소(현 고용노동부 울산지청)는 경남 양산공단 내 플라스틱 분쇄기 제조업체인 현대정밀산업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한모(당시 39세)·윤모(당시 37세)씨 등 2명의 카드뮴 중독사실을 실토했다.

전년 말 건강검진 결과 두 사람의 혈액·소변 등에서 상당량의 카드뮴 성분이 검출되면서 중금속중독증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이 나와 1990년 9월25일부터 그 다음해 2월25일까지 산재요양 승인을 해줬다는 내용이었다.

부실한 보호구·좁은공간에 환기시설도 없이 유해용접작업 지속
무엇보다 유해사업장에 포함되지 않아 노동행정의 취약성 실증
1993년 부산고법서 승소…문재인 의원, 변호사 시절 맡은 사건
최대 쟁점은 ‘산재요양기간’으로 후에도 지리한 소송으로 점철

정부가 카드뮴 중독 산재사건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울산지방노동사무소가 이 사실을 확인한 것은 1992년 3월9일 양산노동사무소 개소 이전까지 현대정밀산업이 있던 양산지역도 울산에서 관할했기 때문이다.  

▲ 1990년대 당시의 현대정밀산업 내부 작업장 모습.

윤씨는 1988년 4월부터 1년10개월 동안, 한씨는 1988년 12월부터 1년8개월간 현대정밀산업 용접반에서 근무했다가 카드뮴 중독 유소견자 판정을 받자 전국적으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발표 이전까지 현대정밀산업은 유기용제, 특정화학물질, 중금속 등을 취급하는 유해사업장에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노동행정의 취약성도 실증했다.

당시 울산지방노동사무소 김진태 근로감독관(현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장)은 “좁은 공간에서 노동부의 검증도 안받은 부실한 보호구를 착용시킨데다 환기시설 조차 제대로 마련해 놓지 않고 유해 용접작업을 계속 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기업체의 무성의를 지적하기도 했다. 

 

울산지방노동사무소가 관장하고 있던 울산·양산지역에는 유기용제, 특정화학물질, 중금속등을 취급하는 사업장이 무려 427곳에 달했지만, 여기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위한 특수건강진단 의료기관은 울산과 양산에 대한산업보건협회 동해센터와 해성병원(현 울산대학교병원), 동강병원 등 3곳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의료기관들도 각종 장비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은 실정이어서 6개월에 한 차례씩 특수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는 근로자들의 직업병 정밀검진이 사실상 형식적이라는 지적도 받아왔던 터였다.

한씨는 카드뮴 중독 유소견 판정에도 불구하고 몇달 뒤 노동부로부터 카드뮴중독이 아니라며 시한부 산재요양 승인과 함께 그 이후부터는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는 통첩을 받게 된다. 노동부가 카드뮴 중독 관련 직업병 판정 심의를 위한 건강진단심의위원회를 열어 1991년 4월19일까지만 요양을 승인하고 그 이후부터는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면서 요양불승인처분을 내린 것이다.

앞서 동아대의대 부설 산업의학연구소에 한씨에 대한 역학조사를 의뢰했으나 카드뮴 중독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없었고, 한씨가 중금속 중독증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냈던 부산 백병원에 확진여부·치유가능성 등의 소견을 의뢰했으나 회신이 없자 카드뮴 중독증세로 볼 수 없다고 결정한 건강진단심의위 회의 결론을 처분 근거로 삼았다.

 

▲ 국내 최초 카드뮴 중독 산재인정 판결문.

치료는 물론 회사 측으로부터 지급받던 요양급여 마저 끊겨 생계가 막막해진 한씨는 이 문제를 부산고등법원으로 끌고 가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을 하게 된다. 현재 울산지법이 부산지법 울산지원이던 시절이어서 행정심판 1심 재판은 부산고법에서 처리했기 때문이다.

1993년 7월28일. 부산고법 제2특별부(재판장 김적승)는 “원고(한씨)가 낸 청구가 이유 있어 인용한다”면서 “1991년 5월7일 원고에 대하여 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문 주문을 내놓는다. 우리나라 최초로 카드뮴 중독증상을 업무와 인과관계가 있는 업무상 재해로 본 첫 판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다.

“근로자의 취업당시의 건강상태, 직업장애 발병원인물질이 있었는지의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같은 작업장에 근무한 다른 근로자의 동종질병 이환여부, 질병의 일반적인 증상의 특징 등 제반사정을 고려할 때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미루어 볼 수 있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재판장이던 김 부장판사는 이후 제5대 부산지법 울산지원장, 제2대 울산지법원장, 제11대 부산고법원장을 거친 명망이 높던 향판이었고, 소송대리인은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문재인 의원과 정재성 변호사 등 법무법인 부산 소속 변호사 2명이 맡았다. 문 의원은 “이 사건은 정 변호사가 주로 진행했다”고 전했고, 정 변호사는 “카드뮴 중독사건은 산재요양 기간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국내 첫 카드뮴중독 산재 승소판결 확정 이후 요양을 받고 있던 한씨는 1998년 3월 2일 노동부로부터 또다시 장해급여청구서를 빠른 시일내에 제출할 것과 그해 7월31일자로 치료 종결 예정이라는 통지를 받게 된다. 카드뮴 중독이라며 호소하는 증상들이 주관적인데다 고정된 상태이고, 더 이상의 치료가 증상이 호전되는데 있어 크게 기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동부는 이에 불응한 한씨에 대해 치료 종결 예정일을 그해 12월31일자로 바꾸었다가 한씨가 통증을 계속 호소하며 요양연기를 신청하자 1999년 3월 1일부터는 취업을 한 상태에서 요양을 받을 것을 사전고지한 뒤 휴업급여 지급을 중단해 버렸다.

한씨는 이에 대해 휴업급여부지급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해 2000년 11월9일 1심에서는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2003년 6월13일 항소심에서 패소한 뒤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항소심 판결이 확정됐다.

그는 앞서 1991년 8월 혈액검사 결과 당뇨병 진단을 받자 카드뮴 중독 때문이라며 요양승인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하자 행정소송을 냈지만 1심 패소, 상고심 기각 판결을 받는 등 소송으로 점철된 버거운 삶을 이어왔다.

현재 부산시 북구 구포3동에 살고 있는 한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입구까지 판결문 주소만을 들고 찾아간 기자에게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만나주지 않았다.

한편 울산에서는 윤씨와 한씨에 앞서 농약원료 제조업체인 송원산업에 근무하던 심문보(당시 27세)씨가 1989년 8월 첫 카드뮴 중독증세를 보였으나 행정소송을 통해 인정받기는 심씨가 두 번째로 기록됐다.

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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