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날 맞아 발전 방향 되새겨야
아시아에 영향력 미친 울산 車산업

▲ 윤갑한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자동차의 존재이유는 신속한 이동이다. 현대인들은 속도에 매우 민감하다. 한국인은 더욱 그렇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진득하게 기다리지 않고 주방을 향해 “언제 나오느냐”고 할 정도다.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고인 우리 나라가 IT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국민성도 한몫했다고 한다.

말(馬)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기를 바라는 인간의 바람으로 탄생한 게 자동차인 만큼 속도내기는 태생적인 운명이기도 하다.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어른들은 “비호(飛虎) 같다” 말을 자주 했다. 동작이 재빠른 사람을 두고 한 이 말은 호랑이가 먹이를 향해 치닫는 모습을 빗댄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 아무리 날랜 녀석도 요즘의 자동차에 비하랴. 자동차 경주대회의 경우 시속 300km를 넘기도 할 정도니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비호가 아닌 비차(飛車)라는 말이 새로 나올만하다.

자동차의 성능이 날로 향상되고, 거기다 도로까지 좋아진 요즘은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주행은 그리 빠르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시대를 15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현행 일반 시내도로 제한속도인 시속 60㎞도 당시엔 경이적인 속도로 여겨졌다. 그것도 자동차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그랬다.

새로운 문명이기인 자동차가 등장하자 철도와 마차 업계가 시쳇말로 자신들의 밥줄이 위협받는다며 반발했다.

그러자 영국 의회는 ‘공공의 안녕’을 내세우며 규제에 나서기로 했다. 법 제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자동차는 치명적 사고를 일으키고, 말을 놀라게 하고, 좁은 도로를 막고, 밤중에는 주민들을 괴롭히는 괴물이라는 여론몰이를 했다.

그래서 나온 게 그 이름도 희한한 ‘적기법(赤旗法 Red Flag Act)’이다. 1865년에 공포한 이 법은 시내에서는 시속 3.2㎞ 교외에서는 6.4㎞ 이상 달릴 수 없도록 제한했다. 질주욕망이 본능인 자동차에 족쇄를 채운 것. 그리고 차 한 대마다 승무원 셋을 두도록 했다. 즉 운전자 1명, 측면 감시원 1명, 기수(旗手) 1명. 기수는 차보다 55m 앞서서 ‘붉은 깃발(적기)’을 들고 뛰도록 했다. 차가 오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마치 옛날 임금이 어가를 타고 행차를 할 때 “길을 비켜라”고 외치듯이 한 것이다. 자동차가 임금대접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이 희대의 적기법은 결과적으로 산업혁명 원조국인 영국이 자동차산업 주도권을 독일 등 남의 나라에 넘기는 원인제공만 했다. 성인의 보행속도 정도로 달리는―움직인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자동차를 누가 이용하고 구입하겠는가? 이후 ‘적기법’은 법 하나를 잘못 만드는 바람에 자국 산업을 위축시킨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필자 역시 자동차산업에 몸담고 있어서인지 ‘규제 개혁’이라는 말이 언론에서 언급될 때마다 적기법을 생각한다.

지난 2007년부터 해마다 이맘때면 ‘자동차의 날’ 행사가 울산에서 열린다. 아시아 기업 가운데 영향력 2위로 부상할 만큼 장족의 발전을 한 현대자동차가 첫 시동을 건 곳이 바로 울산이다. 따라서 울산에서 자동차의 날을 정하고 여러 기념행사를 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울산공장은 현대차 국내외 공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단일공장 세계최대), 생산 차종도 제일 많다.

따라서 ‘울산발 세계행’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 임직원들은 자부심 못지 않게 책임감도 무겁게 느낀다. ‘품질경영’을 모토로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울산공장이 세계명차의 산실이 되면 울산도 명품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의 날(5월12일)을 앞두고 울산의 발전을 가로 막는 빨간 깃발은 혹시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윤갑한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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