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5명이 14일 베이징의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 난민지위를 요청하며 한국행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중국당국이 자신들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려 할 경우 자살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의 장치웨 대변인은 그러나 "이같은 사람들은 난민이 아니다"면서, "우리는 이같은 사람들의 불법 입국에 언제나 반대해 왔다"고 밝혀 이들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남녀 성인과 청소년이 포함된 탈북자들은 이날 오전 11시(한국시간) 직전 중국 경비원들을 밀치고 대사관 정문을 통과해 구내로 밀고 들어갔으며 이들중 한명은 진입과정에서 정문의 한 중국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명의 탈북자들이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나머지 탈북자들이 스페인대사관에 들어갔으며, 두명은 이후 경비원들을 밀치고 진입했다.

 이들을 도왔던 인사들은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성명서, 그리고 각 개인들의 별도 성명들을 배포했다. 대사관에 진입한 이들의 명의로 된 성명서는 자신들이 여섯 가족과 개인 3명으로 구성돼 있다고 밝혔다.

 영문으로 된 이 성명은 "우리는 지금 엄청난 절망에 빠져 있고 처벌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우리의 불행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우리들중 일부는 중국 당국이 다시 우리를 북한으로 되돌려 보낼 경우 자살하기 위해 독약을 소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명은 이와 함께 자신들은 나이와 이름, 고향 등 인적사항을 담고 있으나 많은 이름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처형등을 두려워해 익명으로 기재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인 14명과 7세된 여자 어린이를 포함한 어린이 1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명은 이들이 왜 스페인 대사관을 택해 망명을 요구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나 "우리 모두에 대해 난민지위가 허용될때까지 보호받기 위해" 스페인 대사관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번 탈북자들의 망명을 지원한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은 탈북자들이 당초 독일 대사관을 목표로 했지만, 독일 대사관이 경비가 심해 스페인 대사관을 선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쥐약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모두가 내게 송환될 경우 처형될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철의 장막 붕괴 직전 서방대사관에 동구인들의 망명요청이 쇄도했던 것에 비유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늘어나고 탈북자 수도 매번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폴러첸은 "그들은 25명을 막을 수 없으며, 앞으로는 150명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북자들의 성명은 또 이들중 일부가 이미 식량과 자유를 찾기위해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관리들에 의해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 수개월간 구금된 적이 있다면서 이들중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을 통해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이 이번으로 최소한 두번째라고 밝혔다.

 스페인 대사관 관계자는 이들이 난민 지위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농민, 전직 경찰, 16세의 고아소녀, 광부 등의 개별 성명도 배포됐는데 이들 성명도 모두 영문으로 번역돼 있다.

 본명이 최병섭이라고 밝힌 한 사람은 성명에서 자신이 52세의 전직 광부로 한때 북한 노동당 당원이었다고 말하고 지난 97년 부인 및 3자녀와 함께 중국으로 탈출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후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된 뒤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면서 특히 노동당원 출신이기 때문에 "만약 다시 붙잡힐 경우 매우 극심한 처벌을 받고 아마 사형당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내 목숨을 걸고 자유를 위해 한국행을 감행하려 한다"고 강조하고 " 한국에서 남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싶다. 장남은 기독교 선교사, 딸은 피아니스트, 막내 아들은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사건발생 30분 후 군복 차림의 중국 보안요원 30~40명이 대사관 밖으로 모여 행인들에게 중국어와 영어로 미안합니다를 외치면서 대사관 접근을 막고 있다.

 현장의 기자들은 이날 대사관으로 진입한 사람이 약 20명이라고 전했다.

 또 사건후 일단의 스페인 외교관들이 대사관 건물 밖으로 나와 경비원들과 얘기를 나눈 뒤 건물로 다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인권단체들로부터 북한의 긴밀한 동맹국으로서 탈북자들에게 망명자 신분을 부여하지 않고 북한으로 강제송환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중국정부에 큰 딜레마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작년 6월에는 탈북자인 장길수 가족 7명이 베이징 주재 유엔 사무소에 들어가 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요구한 끝에 4일만에 필리핀을 거쳐 서울로 입국할 수 있었다.

 한편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도 스페인 대사관으로부터 통보를 받고 상황을 평가중이라고 전하고 최대한 빨리 이들과 접촉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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