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군 상북면에 있는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824) 도의선사가 창건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의선사는 헌덕왕 13년 당나라에서 귀국해 남종선을 펴고자 했으나 당시 사람들이 그의 선법을 따르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설악산에 들어가 40여년동안 수도를 하다가 제자 엄거에게 남종선을 전하고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도의 선사 이후 700여년동안 석남사에 대한 기록이 없다. 석남사에 대한 기록이 다시 나타난것은 숙종 42년(1716)에 만들어진 "석남사적지"에서 이다.

 이 사적지에 따르면 석남사는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이 되었는데 1606년 선조 때 언양 현감이 옛절이 너무 폐사 되어 있는것이 안타까워 대웅전을 짓게하고 기와를 얹었다고 되어 있다. 이후 이 절은 현종 15년(1674)과 순조 3년(1803) 그리고 일제시대인 1912년 중수를 한것으로 되어 있다. 그동안 석남사를 거쳐 간 고승들도 많다. 특히 조선조 말 이 사찰에서 입적을 했던 계오 선사는 도의선사 버금가는 고승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속세 사람들이 시승이라고 부를 정도로 시작에 뛰어났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문집 "가산고"가 석남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의 글은 지금도 명문장으로 통한다.

 이런 석남사가 비구니 도량으로 발을 내 디딘것은 1957년 인홍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부터이다. 평생을 불사에 전념했던 인홍스님은 63년 무진료, 종각, 심계류, 심검당 등을 지어 석남사가 오늘날 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제일의 비구니 도량이 되도록 했다.안타까운것은 이런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석남사가 그동안 기록이 없어 사찰의 역사를 알리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몇일전 조선 시대 불교 유물이 발견된 이 사찰에서 이번에는 신라와 고려시대 도자기 수십점이 발견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석남사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유물은 투박한 미가 배어 있는 신라시대의 토기와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신라시대의 기와 그리고 선이 아름다운 고려의 자기, 수저 등이라고 한다. 울산에는 많은 고찰이 있지만 지금까지 이런 유물이 발견된 사찰은 많지 않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이 석남사는 물론이고 울산의 불교 역사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될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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