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의 한자락이 경북 문경시에서 우선멈춤을 하고 있다. 시기는 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던 통일신라 말기.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뒤로는 높은 산이 둘러쳐져 있다. 골짜리를 이룬 따뜻한 양지에 대궐같은 기와집과 초가를 얹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있다. 이제는 쉬 볼수 없는 고향같다.

 KBS가 지난 4월1일부터 방영하고 있는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오픈 세트장. 2000년 2월 문경시 문경읍 문경새재 제1관문 근처 용사골에 세워진 이 세트장은 한국드라마 사상 최대 규모의 야외세트다.

 2만여평부지에 고려왕궁과 백제왕궁과 고려 사대부촌인 41동의 가와집과 40동의 초가집으로 구성된 평민촌 등 96동의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제작돼 통일신라말기의 일부 초가는 지상 120㎝ 높이의 네 개 기둥위에 올려져 있는 등 특이한 건축양식들도 볼 수 있다. 목재, 석재, 철재, 기와, 짚 등 실제 건축자재가 많이 사용됐지만 특수처리를 한 화학제품을 사용한 탓에 이 특수처리를 한 담장이나 계단 등은 그 자체로도 흥미를 끈다.

 왕건과 견훤은 드라마에서 서로를 죽이려는 원수이지만 이 세트장에선 이웃사촌이다. 골목만 달리해서 한 마을에서 살고 있다. 세트장을 들어서 곧바로 직진하면 골목 끝에 왕건의 고려궁이 우람하게 자리하고 있다. 견훤의 백제궁은 바로 우회전해서 골목 끝에 자리하고 있다. 그 앞으로 양반들이 사는 기와가 즐비한 양반마을, 초가들이 모여있는 상민들 마을, 금세라도 주모가 주안상을 내올 것만 같은 시장, 군사들이 마을을 호위하며 눈을 부라리고 섰을 성곽 등이 자리하고 있다. 몇채의 집에는 누구의 집인지 이름도 달아놓았다.

 물론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볼품없고 왜소해서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던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하던 중 잠시 1천여전에 들른 것처럼. 권훤이 침을 튀겨가며 호령하던 그 백제궁에서 드라마의 한장면들을 떠올리며 권훤의 흉내를 내보면 어떨까. 왕건이 살고있는 고려왕궁은 아파트 7층 높이로 고려의 옛 수도인 개성의 왕궁 터 만월대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를 근거로 건립했다.

 이 세트장이 아니라도 문경은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고장이다. 영남 지방에서 서울로 통하는 고갯길로서 교통 및 군사상의 요지로 이름 높았던 문경새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1920년대에 옛 새재 남서쪽으로 이화령이 뚫리면서 길로서의 구실을 잃고 관광지로 탈바꿈했지만 3개의 관문이 그대로 남아 역사를 말해준다.

 제1관문은 영남제1관인 주흘관으로서 조선 숙종 34년(1708년) 석성과 함께 세워졌다. 제2관문인 조곡관은 선조 27년(1594년)에 건립되었고 주흘관을 세울 때 중건했다. 그후 불에 타서 홍예문만 남았던 것을 1975년에 복원했다. 부근 계곡의 경관이 빼어나다.

 제3관문은 새재 정상에 있는 조령관.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로 주흘관과 함께 세워졌으나 불에 타고 홍예문만 남은 것을 1976년에 복원했다.

 주흘관에서 조령관까지는 6.5㎞. 길손들이 자고 가고 물물교환을 했다는 조령원터를 비롯해 자연석을 깍아 만든 문경새재 민요비,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된 주막과 성황당, 관문을 지키던 군사들의 대기소였던 군막터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차는 다닐 수 없으며 길 주위에 주막들이 있다.

 태조 왕건 오픈 세트로 들어가는 입구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에 역사가 멈추어 모여있는 또하나의 공간 문경새재박물관(054·572·4000)이 있다. 1997년 4월27일 개관한 이 박물관은 세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 주흘실은 "문경새재"를 전시주제로 하고 있으며 제2전시실 조곡실은 "문경의 문화" 제3전시실 조령실은 "문경의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4200여점으로 지역 주민들의 기증에 의해 수집된 것이다.

 근처 마을인 문경시 가은읍 왕릉리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석탄박물관(054·550·6424)도 있다.

 5만166평 부지에 연면적 546평의 박물관은 2개의 실내전시장을 우주생성, 광물화석, 석탄의 이용과 변천, 문경지역 탄광지형도, 단탄식연탄제조기, 출갱장면, 매직비전, 장비전시, 영상관, 문경문화관으로 꾸며놓았다. 야외전시장은 대형 광산 장비가 전시돼 있고

갱내전시실에는 실제 온성광업소 갱도이용, 붕락현장 체험, 갱내식사 장면 등을 체험하도록 해놓았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문화수첩〉

 울산에서는 대구로 가서 대구에서 문경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대구~문경 버스는 오전 6시48분부터 오후 6시21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대구에서 문경까지는 2시30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9천200원.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가산인터체인지까지 가서 상주~문경으로 들어가도 되고 의성인터체인지에서 풍양~문경으로 가도 된다. 또 대구에서 칠곡~가산~상주~문경으로 가는 국도를 이용해도 된다.

 문경은 워낙 관광지로 다듬어놓은 곳이기 때문에 숙박시설과 식당이 많다. 먹거리로는 빙어와 숭어요리를 특별한 음식으로 꼽는다. 빙어회나 튀김은 다른 지역에서도 맛볼 수 있으나 살색이 빨간 숭어회는 좀체 보기 힘든 요리로 맛이 담백하다. 요즘에 가면 문경의 특산물이 사과를 맛볼 수 있다. 문경시는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심해 사과가 유난히 맛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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